[전북 부안·고창, 전남 영광=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해상풍력 건설로 양식장이 피해를 입어 수억원을 날렸어요. 그래서 과거 정부 때는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해상풍력 사업을 반대하는 시위도 많이 했죠.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김인배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 민관협의회장은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부안군 위도면 대리어촌계장을 맡고 있는 김 회장은 3대가 위도에서 살고 있는 ‘찐’ 토박이다. 위도는 실증단지까지 어선으로 10분 안팎 거리(9.2km)다. 지난 10년간 누구보다 지근거리에서 해상풍력사업을 지켜본 그는 “해상풍력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인배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 민관협의회장(부안군 대리어촌계장)이 서남권 해상풍력 실증단지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이데일리]
文 대통령 찾은 국내 최대 해상풍력 단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17일 한국판 뉴딜의 그린뉴딜 첫 현장방문으로 부안을 찾았다. 문 대통령은 “2030년 세계 5대 해상풍력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며 △2030년까지 전국에 12기가와트(GW)로 해상풍력 100배 확대(설비용량 기준) △연간 8만개 일자리 창출 등을 약속했다. 현재 부안에는 60MW 해상풍력 20기가 설치돼 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큰 해상풍력 단지다. 현 계획(2.4GW)대로 가면 2030년에 부안·고창 인근에 최대 800기(1기당 3MW 기준)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설치된다.
대규모 해상풍력 발전소 설치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마찰은 예외 없이 벌어지는 일이건만 지난달 25일 취재진이 찾은 부안은 달랐다. 다른 지역에서는 갈등이 심해 수협중앙회가 ‘일방적 해상풍력사업 추진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지만, 부안 읍내에서는 해상풍력을 반대하는 현수막 하나 없었다. 오히려 김 회장을 비롯한 부안 어민들은 “그린뉴딜을 지지하는 민심을 제대로 알려달라”며 취재진을 현장으로 안내했다.
해상풍력 20기가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 실증단지에 설치돼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부안 가력도항에서 어선으로 40여분 걸려 실증단지에 도착했다. 3t 규모 어선이 좌우로 춤을 추듯 요동쳐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선에 파도가 들이쳐 신발은 흠뻑 젖었다. 촬영을 위해 준비했던 드론을 띄우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김 회장은 “오늘처럼 날씨가 맑아도 이 정도 바람이 불 정도로 풍황이 좋다”며 “위도 인근으로 해저면이 수심 10m 수준에서 완만한 평지여서 최적의 해상풍력 입지조건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적의 발전이 가능하도록 해상풍력은 24시간 원격으로 실시간 관리된다. 운영업체인 한국해양풍력(주)은 실증단지에서 9.6km 떨어진 고창군 명사십리 해안가에 실증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CCTV를 통해 해상풍력 실증단지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변전소 등의 설비를 원격으로 가동한다. 두산중공업(034020) 서남해 해상풍력 허성웅 현장소장은 “해상풍력이 목표치(85%)를 넘은 97~98%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어림잡아 수백마리나 되는 학꽁치가 먹잇감을 찾아 해상풍력 발전기 근처로 몰려왔다.[사진=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해상풍력, 인공어초 역할해 물고기 몰려”
어선을 타고 해상풍력 가까이 다가가자 흐릿하게 보이던 것들이 또렷해졌다. 해상풍력 발전기를 지지하는 대들보 역할을 하는 기초구조물에는 해수면과 맞닿은 곳에 따개비 등이 새까맣게 붙어 있었다. 어림잡아 수백마리나 되는 학꽁치도 먹잇감을 찾아 해상풍력 발전기 근처로 몰려왔다. 김 회장은 “아직 실증단계여서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해상풍력 가동(상업운전 시작일 2019년 7월24일) 이후 새로운 서식지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안군은 해상풍력 발전기 인근에서 조업하는 방안을 어민들과 논의 중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수협이 의뢰한 ‘해상풍력발전이 수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례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 연구용역에서 “(해양)동물들은 풍력단지를 좋아한다.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에 돌고래나 물개들이 찾아든다”는 독일의 연구 결과를 전했다. 해상풍력 엔지니어 출신 해양전문가인 이연승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통화에서 “노르웨이에서도 해상풍력 구조물이 인공어초 역할을 해 오히려 인근 양어장에 물고기가 몰린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부안도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명박정부 때인 2010년 11월 해상풍력추진로드맵이 발표됐지만 박근혜정부 때까지 첫 삽을 뜨지도 못했다. 해상풍력 사업자가 조업 피해 등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건설을 강행한다는 어민들과 어민·주민들이 과도한 보상을 요구한다는 사업자 간 충돌로 해상풍력 사업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지역민도 찬반 둘로 갈라져 반목이 심했다.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공사는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에야 착수됐다.
어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지자체가 주도하는 개발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 지원 △지역주민이 계획 수립부터 참여하고 발전수익 공유 등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자료=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환경부]
해상풍력사업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민관협의회가 구성되면서다. 김성원 부안군 신성장전략팀장은 “과거정부에서 제대로된 어민·지역민 의견수렴 기구가 없다 보니 갈등이 많았고 사업 추진도 힘들었다”며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민관협의회를 만들면서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고 전했다.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 민관협의회에는 중앙정부(산업통상자원부·해양수산부), 지자체(전북도·부안군·고창군), 업계(한국전력(015760)) 등 주요 관계자들이 모두 참여했다.
민관협의회는 운영규정에 △서남권 해상풍력 사업 추진과 수산업 공존, 이익공유 등 지역 상생방안 △해상환경 문제 등 주민 의견수렴 등을 명시하고 논의에 착수했다. 어민들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사항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위원들이 협의·합의·의결을 거쳐 협의회를 민주적으로 운영했다. 그 결과물이 지난 7월17일 문 대통령 방문 당시 체결한 ‘전북 서남권 주민상생형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추진 업무협약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17일 전북 부안군 위도 부근 해상에 위치한 서남권 해상풍력 실증단지를 찾아 해상풍력 강국 비전을 발표했다. 참석자들은 ‘전북 서남권 주민상생형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추진 업무협약서’(MOU)를 체결한 뒤 지역 특산물 사진을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유기상 고창군수,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 이성태 고창군 주민대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문 대통령, 송하진 전북도지사, 김인배 전북 서남권 해상풍력 민관협의회장(부안군 위도면 대리어촌계장), 권익현 부안군수 모습. 태극기가 걸려 있는 건물은 무인 변전소다. 연합뉴스 제공
“2030년까지 넘을 산 많아…어민과 상생해야 성공”
어민들은 문 대통령이 이날 약속한 △지자체가 주도하는 개발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 지원 △지역주민이 계획 수립부터 참여하고 발전수익 공유 등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반면 이같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주민들의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민관협의회 위원인 김우철 부안군 대항어촌계장은 “MOU 체결로 해상풍력 총론에 합의했지만 앞으로 세부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해상풍력 건설 과정에서 정부 약속대로 안 될 경우 어민들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 대표로 MOU에 참여한 김인배 회장은 “문재인정부가 과거 정부가 달랐던 점은 민관협의회를 구성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던 점”이라며 “수산업과 공존하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서 국가와 어민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갔으면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해상풍력이 세계적으로 롤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재창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 해상풍력 대책위원장(영광군 수협 조합장)은 “어민들이 국가에서 하는 에너지 사업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라며 “부안 이외 지역에서는 일선 조합장들이 잠을 못 잘 정도로 어민 갈등이 심한 곳도 많다. 청와대 중재로 갈등을 조정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정부는 지난 7월17일 해상풍력 추진 로드맵을 담은 ‘해상풍력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 [자료=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환경부]
정부는 지난 7월17일 전북 부안·고창, 전남 신안, 울산, 제주, 인천 등에 해상풍력을 설치하는 ‘해상풍력 발전 방안’을 발표했다. [자료=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환경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