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기 임금격차 더 심화…정부, 명확한 통상임금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②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대법원, 통상임금 판결 뒤집어 노사 신뢰 훼손
산업 전반 고용안정성·기업 지속가능성 위협
대기업 연봉 360만원 늘 때 영세사업장은 20만원↑
노조, 지속가능·공정 노동시장 조성에 협력해야
  • 등록 2025-01-15 오전 5:31:01

    수정 2025-01-15 오전 6:28:37

[한국경영자총협회 이동근 부회장·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통상임금 판결을 통해 노사 간 신뢰를 훼손시키고 혼란을 초래했다. 국회는 이미 중대재해처벌법, 노조법 2ㆍ3조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 등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들을 양산하는 반면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안들은 논의의 첫발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0년 넘게 유지되던 통상임금 법리를 스스로 뒤집었다. 노사가 기존 대법원의 판단을 신뢰하며 임금인상률과 각종 수당을 정해온 기존의 자율적 관행을 무시했다는 점이 문제다.

대기업 연봉 360만원 늘 때 영세사업장은 고작 20만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재직 조건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할 경우 연간 6조7889억원에 달하는 추가 인건비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 약 9만2000명 이상을 고용할 수 있는 막대한 금액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청년실업자(24만3000명)에게 1인당 연간 2794만원을 지원 가능한 금액이기도 하다.

이는 재직자 조건이 있는 정기상여금 부분에 국한된 수치다. 근무일수 조건이 있는 정기상여금을 비롯해 각종 수당까지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통상임금은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수당 등을 계산하는 기준이 되는 임금이므로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들의 연쇄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 후 기업들은 규모에 따라 작게는 수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이 넘는 인건비 상승이 예상된다고 한다. 결국, 상당한 추가 비용 부담은 기업들이 경영전략을 재조정해 신규 인력 채용을 줄이고 청년 일자리 창출 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와 노동시장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정기상여금과 초과근로수당의 혜택이 더 많은 대기업 근로자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문제다. 경총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근로자는 연평균 361만6000원 임금 총액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29인 이하 사업장 근로자는 연간 20만8000원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 다니는 A씨의 연봉이 361만원 늘어나는 동안 29인 이하 사업장에 다니는 B씨는 불과 20만8000원 느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지고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2024년 12월 5일 오후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명촌정문에서 오전조 근무자들이 2시간 일찍 퇴근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이날부터 이틀간 오전 근무조(1직)와 오후 근무조(2직)가 매일 2시간씩 총 4시간 파업을 결정했다.(사진=연합뉴스)
노동계는 판결 일주일 만에 각 지부에 통상임금 관련 대응지침을 배포하며 통상임금 해당 여부의 즉각적 재검토와 2025년 미사용연차수당 산정 시 새로운 통상임금 적용을 요구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사용자가 성과나 실적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을 요구한다면 강경하게 저지하도록 하고 있다. 노동계의 과도한 요구는 결국 산업 전반의 고용 안정성과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기업들은 이미 2025년도 임금 추계를 완료한 상태에서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인한 인건비 반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노사 간 협의가 필요하지만, 대법원의 판결로 촉발된 급작스러운 변화가 이러한 준비 과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또한 현재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주요 노동 판결들이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어 산업계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경영성과급(인센티브)을 퇴직금 산정기준인 평균임금에 포함할지 여부와 원청기업의 사용자성을 다루는 사건들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 판결들에서 통상임금에 더해 평균임금까지 확대될 경우 산업 현장에서 교섭과 파업이 지속되는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법원은 판결에 앞서 사회적 신뢰와 경제적 안정성을 고려하고 사법적 판단의 한계를 준수해야 한다. 법원이 입법의 역할까지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많다.

정부, 감독보다 새 법리 연착륙 유예기간 적용해야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앞으로 기업이 직면할 중요한 과제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임금체계의 재정비와 법적 리스크 관리다. 여전히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소정근로의 대가성, 일률성, 정기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노조는 향후 모든 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므로 이를 임금산정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기업은 이러한 주장에 무조건 동의할 것이 아니라, 각 수당이 법률상 요건을 충족하는지 신중하고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변화하는 경영 환경과 공정한 보상 체계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 직무와 성과를 기반으로 한 임금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 역시 변화된 경제적·사회적 환경을 인식하여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노동시장을 조성하는데 적극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 없이는 어렵다. 기업들이 각종 수당의 통상임금성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고, 임금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과 지원이 필요하다. 노사 간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기에 하루아침에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장기적 과제다.

따라서 정부는 노사합의를 위한 절대적 시간이 필요함을 인지하고, 감독보다는 새로운 법리가 사업장 내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제공해야 한다. 유예기간은 기업이 급격한 비용 부담을 완화하고, 근로자와 충분히 소통하며 지속 가능한 임금체계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아울러 법적 혼란을 줄이기 위해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과 실질적 지원을 강화하고, 산업계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노사 간 신뢰 기반의 임금 구조 개편을 뒷받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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