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의 시대]손자의 결혼·육아…할아버지가 책임진다

일본 신탁제도의 시작과 발전②
  • 등록 2020-12-05 오전 9:00:00

    수정 2020-12-05 오전 9:00:00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신탁은 투자자의 여러 수요에 맞는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여 일본은 가계자산을 금융시장으로 유입하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해 왔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2004년 일본은 ‘신탁업법’을 개정해 수탁 가능한 재산의 범위를 확대하였다. 2004년부터 수탁 가능 재산의 제한을 철폐하면서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권 등도 수탁하여 신탁 영역을 넓혀갔다. 또 금융회사가 아니어도 신탁업무를 취급하도록 허용하고, 신탁계약 대리점 제도, 신탁수익권 판매업자 제도를 신설해 신탁서비스의 이용 채널이 확대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2006년에 ‘신탁법’이 크게 개정되며 유언대용신탁 등 새로운 제도들이 도입되었다. 살아가며 반드시 겪는 라이프 이벤트에 맞춰 다양한 신탁상품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모습에서 신탁이 멋진 제도로 자리매김할 우리 사회 미래도 그려본다.

라이프 이벤트에 발맞춰온 다양한 일본의 신탁

일본은 고령화가 시작되면서 할아버지부터 증손자 세대까지 ‘4세대가 동시에 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금융기관에서는 4세대 각각의 다양한 요구사항과 라이프 이벤트에 맞춰 금융상품, 보험, 신탁을 갖추고 라이프 플랜 금융컨설팅을 구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3세대를 넘어 4세대가 살아가는 가정이 늘어날 것이며 개인과 가정, 세대를 동시에 고려하고 만족시키는 금융 솔루션을 구현하는 상황이 올 것이며 그 기반에는 신탁이 자리매김 할 것이다.

일본의 고령화와 함께 시작된 유언장 보관 및 유언집행서비스 그리고 유언대용신탁, 후견제도지원신탁 및 세제혜택이 있는 교육자금증여신탁, 결혼양육지원신탁을 소개한다.

유언장 쓰는 문화와 ‘유언장 보관 서비스’ 시작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고령화 시대 금융서비스 중 하나가 ‘유언장보관 및 유언집행서비스’이다. 일본에서는 이 두 가지를 통상 유언신탁이라고 칭하고 있다. 다만, 신탁법에서 정하고 있는 유언신탁 즉 생전에 유언장을 작성하고 사후에 신탁이 설정되는 방식이 아니라 일본에서는 신탁은행 등이 유언장 작성에 대한 상담부터 유언장 보관 및 유언집행까지 책임지는 신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신탁협회 자료에 의하면 2018년 9월 기준, 유언장 보관 및 집행서비스를 합해 13만 2,741건을 기록하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일본은 1994년 고령인구가 14%를 넘는 고령 사회로 진입하였는데, 아무런 준비없이 사망하는 고령자들이 증가하며 가족 간 상속분쟁이 급증하였다. 당시 일본은 유언대용신탁은 도입되지 않은 상태로, 상속 분쟁에 대비해 유언장을 쓰자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이때 금융기관의 유언장 보관서비스가 시작되며 사망이 증가하며 유언집행 업무도 지원하게 되었다. 일본의 유언과 금융기관의 유언관련 서비스 현황을 보면 우리도 지금부터 미래를 대비하여 남겨진 상속인 간에 갈등을 줄여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 의지대로 설계할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

일본에서 2006년 ‘신탁법’ 개정으로 등장한 ‘유언대용신탁’은 오랜 기간 진행되었던 유언신탁에 비해 최근 몇 년 동안 빠르게 증가하였다. 유언대용신탁 계약은 2012년 이후 급격히 증가해 2018년 상반기까지의 수탁 건수가 약 16만 4,000여 건을 기록하였다. 유언대용신탁은 생전에는 위탁자 본인이 원하는 대로 재산을 관리·운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고 사후에는 배우자, 자녀, 제3자 등을 수익자로 지정하여 신탁재산이 이전되도록 설정한 신탁이다.

유언대용신탁의 장점은 위탁자가 생전부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재산을 관리·운용하고, 사망 이후에 자금을 지급할 시기와 지급 방법을 맞춤형으로 미리 설계해둘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전에는 치매 등을 대비한 노후자금으로 사용하다가 상속이 발생했을 때 계약에서 지정된 수익자에게 자금을 즉시 이전할 수 있다. 또 연금식으로 장기에 걸쳐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재산관리 능력이 부족한 미성년 자녀나 장애를 가진 자녀에게는 연금식으로 재산을 이전하여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다. 만약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면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미리 지정한 후계자에게 상속할 수도 있다.

2010년에 100년 리빙트러스트센터에서 금융권 최초로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하였고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신탁된 재산은 신탁 후 1년이 경과되면 유류분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판례가 있음은 소개한 바 있다.

치매 등 노인성 질환에 대비한 ‘후견제도지원신탁’

일본은 2000년에 성년후견제도가 도입된 이후 피후견인의 재산을 후견인이 유용하는 크고 작은 사고가 생기는 등 재산관리에 대한 문제가 노출되었다. 이에 일본 최고재판소가 피후견인의 재산을 신탁을 통해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는데, 바로 ‘후견제도지원신탁’이다.

신탁이 성년후견제도를 뒷받침하는 재산관리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후견제도지원신탁은 계약 체결부터 변경 및 해지가 가정재판소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로써 후견인조차도 신탁된 재산에 대해서는 임의로 인출할 수 없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었다.

일본신탁협회 자료를 보면 후견제도지원신탁은 2012년 2월에 처음 출시된 이후 2018년 9월까지 수탁 건수가 2만 1,000건을 넘어섰고, 최근 3년간 2015년 대비 약 4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특히 치매 환자들의 성년후견제도 신청 비율이 높아 치매 환자들의 재산보호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 7월에 성년후견제도가 도입되었고. 100년 리빙트러스트센터에서 2016년 12월성년후견지원신탁(치매안심신탁)을 선보였고 17년 1월 최초 계약을 체결하였다.

고령화로 고여 있는 돈 문제를 해결한 일본의 신탁

‘교육자금증여신탁’이란 고령자가 가진 자산을 젊은층으로 이전시켜 교육과 인재육성을 지원하고 소비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2013년 세제 개정을 통해 일본에서 새롭게 등장한 신탁이다. 교육자금증여신탁은 손자 등의 교육자금으로 조부모 등이 현금을 신탁한 경우 1500만 엔(한화 약 1억5000만 원)까지 비과세되는 신탁이다. 이 신탁의 당사자는 ① 위탁자(조부모, 부모 등 수익자의 직계존속) ② 수탁자(신탁은행 등) ③ 수익자(30세 미만의 개인)이다. 수익자(자녀 또는 손자녀)가 사망하거나 30세가 되면 신탁이 종료되며, 남은 재산에 대해서는 증여세가 부과된다.

고령자에게 고여 있는 자산을 젊은 세대에게 이전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2015년 세제 개정 시 또 하나의 세제혜택 방안을 마련했는데 바로 2015년 4월에 ‘결혼·육아지원신탁’이 등장했다. 결혼·육아지원신탁이란 조부모 등이 손자나 자녀들에게 결혼·출산·육아 자금을 일괄 증여한 경우 증여세가 비과세되는 신탁이다. 신탁의 당사자는 ① 위탁자(조부모, 부모 등 직계존속) ② 수탁자(신탁은행 등) ③ 수익자(20세 이상 50세 미만의 개인)이고, 1000만 엔(약 1억 원)까지 수탁할 수 있다.

◆배정식 센터장은…

1993년 하나은행에 입사해 현재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0년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리빙트러스트를 연 뒤, 신탁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서울대 금융법무과정, 고려대 대학원(가족법), 건국대 부동산 대학원 등을 거쳐 호서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현재 금융연수원 등에서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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