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문재인의 눈물

광해군 중립외교 재조명 vs 인조 재조지은 명분 집착
盧 동북아균형자론 주창, 朴 ‘中 전승절 참석’ 유사
한미정상회담 성과 따라 文대통령 국정운영 희비 갈려
예측불허 캐릭터 트럼프 상대할 文대통령 승부수는?
  • 등록 2017-06-27 오전 6:00:00

    수정 2017-06-27 오전 6:00:00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관람 이후 눈물 흘리는 문재인 대통령(사진=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임진왜란 하면 주인공은 이순신입니다. 조선은 단지 멸망하지 않았을 뿐인데 마치 승리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순신의 활약상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이 임진왜란의 주연으로 등극한 것은 후원자였던 서애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이순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16세기말 이후 조선의 선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을 구한 것은 명나라의 파병 때문이라는 게 압도적인 사고였습니다. 정조는 1793년 7월 이순신을 의정부 영의정으로 추증하면서 “명나라의 은총을 입어 천하의 명장이 된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명나라의 임진왜란 참전은 향후 조선 지식인 사회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얼마나 명나라를 흠모했는지는 광해군 시절 명청 교체기 때 잘 드러납니다. 이른바 ‘재조지은(再造之恩)’입니다. 임진왜란으로 망해가는 조선을 구해준 명나라의 은혜라는 뜻입니다. 떠오르는 청나라와 몰락해가는 명나라 사이에서 실리보다는 의리를 택했습니다. 광해군 이후 집권한 인조는 ‘재조지은’을 강조하다가 병자호란의 참화를 겪었습니다. 청나라에게 당한 치욕을 씻자는 효종의 북벌 역시 허망한 것이었습니다. 조선 선비들에게 동북아 최대 강국 청나라는 한낱 오랑캐의 후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명나라 멸망 이후 조선 지식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자발적으로 ‘소중화’를 자처했습니다.

문재인은 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펑펑 울었나?

문재인 대통령은 영화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적지 않습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린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라는 영화입니다. 문 대통령은 영화 속에서 고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차분하게 읽게 내려갑니다. 그러나 눈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중들이 문재인의 눈물을 기억하는 영화는 ‘광해 왕이 된 남자’입니다. 말 그대로 펑펑 울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남들 보는 앞에서 수습 못할 정도로 이렇게 울어본 적은 처음이네요”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1200여만명의 국민이 함께 했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노무현과 묘하게 오버랩됩니다. CJ E&M이 박근혜정부 시절 미운 털이 박힌 것은 영화 ‘변호인’과 더불어 ‘광해 왕이 된 남자’ 때문이라는 풍문도 돌았습니다.

영화에 대한 문 대통령의 기억은 강렬했나 봅니다. 2012년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한창 바쁜 10월 중순에 페이스북을 통해 영화에 대한 평을 남겼습니다.

“제가 요즘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마지막 장면이었던가요. 강나루터 이별 장면. 백성이 원하는 진짜 왕이었지만 궁궐을 떠나야했던 하선. 가짜 왕노릇을 가르쳤지만 끝내 마음 속 왕으로 인정하고야 말았던 도승지 허균. 목례를 올리며 예를 취하는 허균에게 떠나는 배에서 손 흔들며 웃던 하선. 아마도 그 장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저절로 떠올랐던 모양입니다. 남들 보는 앞에서 수습 못할 정도로 이렇게 울어본 적은 처음이네요. 하선이 사대외교를 주장하는 신하들에게 호통을 치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야지’ 라고 했던 대사와 몇몇 장면에서, 참여정부 시절 균형외교를 추구했다가 보수세력과 수구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았던 기억들과 겹쳐졌습니다. 곳곳에 그런 기억들 상기시켜주는 장면이 많아서 가슴이 먹먹했었는데 마지막 이별 장면에서 감정이 터졌던 것 같습니다.”(2012년 10월 15일 페이스북 영화 ‘광해’에 대한 소감)

광해군의 명청 중립외교 vs 노무현의 동북아균형자론

조선의 역대 임금 중 ‘광해군’ 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도 없습니다. 역사는 광해군을 폐륜을 저지른 왕으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광해군은 아버지인 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에 올랐을 때 분조를 이끌며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랐지만 인조반정으로 몰락했습니다. 광해군이 현대에 와서 재조명을 받은 것은 임진왜란 이후 쇠약해진 명나라와 강성해진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선택한 부분이었습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재조지은을 내세우며 명나라와의 의리를 강조했습니다. 광해군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세자 시절이었던 임진왜란 때를 생각하면 또다시 전쟁을 불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광해군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중립외교는 인조반정 이후 마침표를 찍습니다. 인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특히 삼전도의 굴욕은 조선 역사의 최대 치욕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과거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주는 의미는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른바 G2로 불리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외교적 노선을 취하는 게 가장 국익에 합당한가라는 근원적 물음입니다. 미국은 대한민국 외교의 최대 중심축입니다.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구해준 최대 우방국입니다. 한미동맹을 단순한 동맹이 아닌 ‘혈맹’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 도저히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중국은 대한민국 경제의 최대 파트너입니다. 6.25 전쟁 당시만 해도 적국이었지만 최대 교역대상국입니다. 중국없는 한국경제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사드 배치에 반발한 중국이 경제보복에 나서자 대한민국의 관광업과 제주도 경제가 휘청거린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역대 대통령도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벤치마킹한 사례가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른바 동북아균형자론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이 대표적입니다. 우선 동북아균형자론은 참여정부의 외교적 비전이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동북아에서 한국이 보다 적극적인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힘의 뒷받침이 없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담론이라는 점과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할 뿐이라는 비판 속에 사실상 폐기됐습니다.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도 파격적이었습니다. 더구나 중국은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과 싸운 적국이었습니다. 물론 북핵문제 해법에 대한 중국의 지렛대 역할을 강조한 외교전략 중 하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야무야됐습니다.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국익을 지켜낸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흔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양대 기본축을 토대로 대한민국의 외교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안보와 경제가 두부 자르듯이 딱 구분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文대통령, 한미정상회담 이후가 최대 분수령

잘 나가던 문재인 대통령이 최대 갈림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물론 문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일단 그렇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인수위가 없었다는 현실적 한계에도 인사를 둘러싼 각종 잡음은 위험수위라는 비판이 야당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야당의 쏟아지는 견제구에도 문 대통령을 떠받치는 것은 국민적 지지입니다. 인사잡음으로 다소 하락하기는 했지만 지지율은 여전히 70%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대선 득표율의 두 배 가까운 수치입니다.

다만 한미정상회담은 중대 분수령입니다. 한반도 주변 4강을 ‘미중일러’라고 표현하면서 미국을 제일 첫손에 꼽는 것은 그만큼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역대 모든 대통령이 취임 첫해 4월을 전후로 미국순방에 나섰습니다. 한미정상회담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최대 외교 이벤트입니다. 정상회담의 성과에 따라 향후 국정운영의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는다면 외치를 지렛대 삼아 내치에서의 불안 요인을 잠재우고 국정주도권을 계속 쥐고 갈 수 있습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찰떡공조를 바탕으로 한미, 남북, 북미관계에서 황금기를 연 게 대표적입니다. 소수파 정권이었지만 외치의 성과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내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외치에서 예상치 못한 불협화음이 적나라하게 노출될 경우 내치는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박정희 vs 카터, 김영삼 vs 클린턴, 김대중 vs 부시, 노무현 vs 부시의 삐걱거림이 대표적이다. 묘한 것은 대한민국이 보수 대통령이면 미국은 진보정권, 진보 대통령이면 미국은 보수정권이었다는 점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반미면 어떠냐”, “미국에 사진 찍으러 가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대미외교에서 자주성을 강조한 것이었지만 보수진영은 ‘노무현=반미’라는 프레임으로 임기 내내 공세를 펼쳤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참여정부 시절을 되돌아보면 한미동맹은 이전보다 더 공고화됐습니다. 이라크파병, 평택 미군기지 이전, 제주 해군기지 건설, 한미 FTA가 대표적입니다. 모두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고 비판받았던 사안들입니다. 대선 때 노무현을 찍었던 지지자들마저 지지를 철회할 정도였습니다. 노무현이 지지자들을 열광시켰던 대미관계 이슈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였습니다. 노무현은 전작권 환수에 반대하는 전직 군장성들을 향해 “자기들 나라 자기 군대 작전통제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놓고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느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문재인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대사와 비슷합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발언으로 융단폭격에 시달린 바 있습니다. 역설적인 것은 취임 이후 첫 순방은 미국입니다. 최대 이슈는 역시 북핵해법입니다. 대북제재에 무게를 두는 미국측 기류와는 달리 제재와 대화 병행이라는 투트랙 접근법을 내세웠습니다. 전략적 모호성을 강조해온 사드문제 역시 이번 회담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합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의 상대인 트럼프 대통령은 대단히 난해하고 예측불허의 캐릭터입니다. 노 대통령이 상대했던 부시 대통령보다 더 힘든 상대일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승부수는 무엇일까요? 트럼프를 설득해낼 수 있을까요?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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