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당선은 여러 면에서 ‘대이변’이었지만 선택권을 가진 미국의 유권자, 그중에서도 주류계층의 입장에서 보면 그닥 이상한 일은 아니고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보호무역주의나 반이민정책, 오바마케어 철폐 같은 그의 공약들이 당장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한마디로 다른 나라와의 불화(不和)를 감수하고라도 미국 국민의 살림살이가 궁핍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내세워 당선됐다. 실제 미 대선이후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62%가 트럼프행정부가 일자리를 늘리고 실업률을 낮출 것으로 기대한다고 응답했다.
뒷북이기는 하지만 트럼프는 이단아가 아니라 현실을 간파하는 영악한 전략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그가 당선이후에 일부 과격한 공약들에 대해 수정의사를 밝히고 요직에 합리적인 인물들을 내세우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속내가 어떤지는 몰라도 오바마 대통령도 트럼프를 ‘실용적인 인물’로 평가했다.
졸지에 ‘순실의 시대’를 살았음을 알게 된 우리의 딱한 처지도 따지고 보면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루하루를 버티기가 빠듯한데 미래만 이야기하고 누구의 동의도 얻지 못한 채 창조경제와 개혁을 내세우다 보니 정책은 갈수록 현실과 멀어져갔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의원들 조차 대통령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던 ‘불통’의 시대를 묵인해 왔던 결과는 모두가 느끼는 대로 참담하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대통령은 ‘잘 살아 보자’는 현실적인 목표를 내세워 그 약속을 지켰다. 그 덕분에 독재·장기집권 등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나라 발전에 기여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최순실게이트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이 순간에도 ‘비현실적인 정치’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100만 촛불민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로 일관하려는 대통령이나 정치적인 이해타산에 빠져 난국 수습은 뒷전인 여야 정치권을 보고 있노라면 불안하고 불편한 현실이 언제쯤 나아질 수 있을까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