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쟁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눈부셨다. 당의 이름과 로고를 파격적으로 교체하고 진보의 전유물이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담론을 선점했다. 그리고 인구학적 지표로 유권자를 나누어 마이크로 타겟팅하고 그들의 생활 패턴을 알고리즘화하여 젊은 유권자들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 선거의 여왕이 당선 이후 보여준 말과 행동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역대 최저 수치인 40%대 초반 까지 떨어진 지지율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취임 전에 맞이한 초유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면 박대통령은 이제라도 감동적인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
한국 대통령은 절대 권력을 한계 시간 동안만 행사하다가 1825일 후 적수공권으로 돌아가는 형용 모순의 존재다. 연임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과의 대결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들은 역설적으로 현실 정치의 정쟁 속에서 초연할 수 있으며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정치적 이상을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그런데 박대통령은 초당파적 국민 내각을 구성할 수 있는 이 엄숙하고도 행복한 순간에 국민정서를 무시한 흠집 많은 인사들을 장관후보자로 지명하고 있다. 그리고 상황이 바뀌었다며 ‘경제민주화’를 핵심 국정목표에서 삭제해 버렸다. 약속을 저버린 권력에 대해 사람들은 존경심을 거두고 실망, 무관심, 분노 그리고 경멸의 순으로 급격한 감정의 소용돌이 반응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지금 박대통령에 대해 실망하고 있지만 아직 분노심을 느끼지는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앞으로 5년간 국정을 잘 수행 할 것으로 보는가’란 질문에는 긍정적 전망이 71%에 달하고 있다. 국민들은 속을 끓이면서도 박근혜의 감동적인 시나리오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박대통령이 위대한 시나리오를 쓸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