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학교에서는 뜻밖의 통보를 해왔다. 정원이 다 찬 만큼 현찰로 300만원을 내야 학생을 받아 줄 수 있다는 것.
양심에 걸렸지만 고민끝에 A씨는 결국 교장실로 찾아가 돈뭉치를 건냈다. 포기할 수 없는 사립초등학교의 장점 때문이었다.
1인당 1천만원의 입학 장사를 하다 경찰에 적발된 한양대 부속 한양초등학교처럼 추첨에서 떨어진 학부모들이 돈뭉치를 들고 찾아갈 정도로 사립초등학교의 인기는 최근에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학부모들이 이처럼 꾸준히 사립초등학교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정규 교육에서 받지 못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고 말하지만 부모들의 속내는 따로 있다.
서울 양천구에서 마포구까지 사립초등학교로 자녀 2명을 통학시키고 있는 주부 B(41)씨는 "친구들이 다 비슷하고, 부모들도 비슷한 정도의 학력과 교육열로 만난 사람들이라 그 점이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립초등학교 학부모 C(41)씨도 "아이들이 커서 자기들만 갖고 있는 결속력이 생기는 것 같다. 사립초등학교 나왔다는 것 자체가 나중에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재력이 있는 집안 자녀들만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사립초등학교는 장기적으로는 대입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한다.
참교육학부모 장은숙 회장은 "어느 학교를 나왔냐가 경력이 되기 때문에 국제중 입학을 원하거나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입학사정관제에서 유리한 입지를 얻기 위해서 사립초등학교를 선호하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같은 사립초등학교의 인기 속에서 입학을 대가로 돈을 받는 행위는 관행으로 굳어 있었다.
한양초교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립초등학교에서 암암리에 입학을 미끼로 기부금을 끌어 모은는 실정이다.
서울의 모 사립초등학교 학부모는 이번 건에 대해 "그런 일들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학교 뿐이겠냐. 오고싶은 사람은 돈을 내고 오고, 다들 그렇게 한다"고 말해 공공연하게 비리가 발생하는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해에 사립초등학교에 지원했다 떨어졌다는 한 학부모는 "아는 사람의 경우 학교에서 2천만원을 내면 들어오게 해준다는 제안을 했다고 들었다. 나도 그런 제안이 있었으면 돈을 내고 입학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립초등학교에서 입학을 볼모로 한 음성적인 돈 거래가 판을 치고 있는데도 교육당국은 그동안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한양초교가 소속된 성동교육청 배만곤 행정지원과장은 "사립 중고등학교는 정기 감사를 하고 있지만 사립초등학교는 정기감사를 하지 않는다. 지도 감독권이 있기는 하지만 사안이 생길때만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계도 "입시에 민감한 고등학교는 직접 감사하고 학생 정원 등을 보고받지만 사립초등학교는 모두 지역 교육청에서 관리한다"면서 책임 소재를 지역 교육청에 떠넘겼다.
파문이 확산되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뒤늦게 관내 40개 사립초교 전체를 대상으로 부정입학 여부를 조사하기로 하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사립초등학교에 대한 시교육청의 권한은 약하다.
실제로 지난 2003년 11월에 재정된 교과부 행정감사규칙에 따르면 "국가로부터 재정지원 없는 학교는 정기감사에서 제외하도록" 돼 있어 100% 학부모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사립초등학교의 경우 몇해전부터 정기 감사를 받지 않고 있다.
학부모들의 일그러진 교육열과 이를 이용한 학교의 장삿속, 교육당국의 무관심이 삼박자로 버무려져 비리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장은숙 회장은 "사립 초등학교가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의무 교육의 일부인 만큼 정부에서 관리, 감독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제라도 교육청의 감사 권한을 강화하고 비리 사실이 적발됐을때 확실하게 처벌해 사학 비리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