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에게 복기(復碁)란 고통스런 일이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하지만 이마저 외면한다면 영원히 패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조훈현은 “아마도 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치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만큼 복기는 고통스럽다. 민경욱은 복기가 아니라 억지를 부리고 있다. 승자에게도 복기는 절실하다. 민주당은 집권여당으로서 능력과 혜안을 보여야 한다.
정치권은 현실을 복기하고 앞날을 노정해야 한다. 핵심은 무엇이 국민을 위한 일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공약을 점검하고, 변화된 정치 환경에 걸맞은 정책 개발은 시급하다. 민주당, 통합당 모두 정책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양당 연구원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지 회의적이다. 산하 연구원을 조속히 정비하고, 정책연구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전환은 중요하다. 상임위원장 몇 석 더 차지하느냐는 저급한 싸움이다.
민주당은 어떨까. 민주연구원은 총선 이후 당선인 혁신포럼, 보좌진 포럼을 연이어 개최했다. 입법정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긍정적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 환경에 부합하는 정책연구원으로 거듭나려면 아직 미흡하다. 그동안 민주연구원은 선거캠프 성격이 강했다는 내부 비판이 있다. 전임 양정철 원장이 중심이 된 민주연구원은 사실상 선거 캠프로써 기능했다.
몇 가지 사례만 보자. 연구원은 시도 연구원과 협약에 이어 순회 정책 간담회를 가졌다. ‘총선 준비 전략과 핵심 교육공약 제안(광주)’, ‘총선 입후보자 교육(전남)’, ‘총선 승리 정당에는 3대 법칙이 있다(강원)’. 간담회 명칭부터 성격이 드러난다. 또 1인 가구 증가와 50대 정치 지향, 유권자 지형 분석, 여론동향 및 총선, 2030 지지율 변동, 가구 소득별 지지율 차이, 정당 지지 변화 분석, 충청 지역 여론, 총선 대비 핵심 공약 발굴 등에서도 확인된다.
무엇보다 집권여당으로써 민주당은 제대로 된 정책연구기관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제안하자면 후임 민주연구원장은 경제와 정책 역량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어느 때보다 경제 전문가가 중요하다. 원외로까지 눈을 돌려 그런 전문가가 있다면 삼고초려할 일이다. 집권여당 씽크탱크가 제 역할을 할 때 국가도 민주당도 산다.
승자도 복기가 필요하다. 바둑 천재 이창호는 전성기 때 이런 말을 남겼다. “승자의 복기는 승리하는 습관을 만들고, 패자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승리하는 습관을 만들고 싶거든 냉정하게 복기하고 정책에 승부를 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