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파출소 뜻도 모르는 아이들…요즘 학교는 `한글 전쟁`

초등생 수준 한국어 시험 보니…중학생 평균 65점
교사들 "단어 뜻 설명하다 수업 끝나…화낼 수도 없어"
성인 13% "맞춤법 자신 없어"…교수 "시험서 맞춤법도 평가"
영상 중심 콘텐츠 소비 탓…국어교육 강화 필요성 대두
  • 등록 2019-10-09 오전 9:41:17

    수정 2019-10-09 오후 1:25:37

지난달 19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태봉고등학교의 역사 수업 모습. 사진은 기사의 특정 표현과 연관 없음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한국어를 제대로 모르는 학생들 탓에 수업에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10대는 물론 대학생들까지 기본적인 한국어 뜻과 맞춤법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영상 중심 콘텐츠 소비가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라고 분석한다. 국어 교육 강화 목소리도 높아진다.

‘파출소’ 모르는 학생…교사 “단어 하나하나 설명하기 지쳐”

9일 NE능률에 따르면 중학생 중 절반 가량 학생들이 초등 수준 어휘력 테스트에서 60점 이하를 받았다. NE능률이 ‘초등 교과 어휘력 테스트’를 중학생 5990명 대상으로 진행할 결과 46.4%가 60점 이하였다. 전체 평균 점수 또한 65점에 그쳤다. 만점자는 4.3%에 불과했다. 학생들은 △부동산 △파출소 △환승 △정차 등의 뜻을 제대로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 때문에 교사들은 수업 진행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충북의 중학교 국어 교사 정모(29)씨는 “교과서를 읽어내려 갈 때 단어 하나하나 설명하다 보면 1교시는 금방 끝난다”며 “미리 모르는 단어를 형광색으로 칠해 예습하라고 할 정도”라고 했다.

교사들은 매년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영어교사 김모(30)씨도 “기본적인 한국어를 알지 못하니 영한 번역은 고사하고 한국어 설명까지 해야 한다”며 “체감상 매년 학생들의 한국어 수준이 하락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572돌 한글날인 지난해 9일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 관광지에서 열린 ‘2018 세종대왕 문화제’를 찾은 시민들이 한글 디자인 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DB)


대학생도 한국어 잘 몰라…맞춤법 검사하는 교수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부족한 한국어 실력 탓에 수업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한다.

국립대 A 교수는 “학생들이 ‘문어체 단어’에 특히 취약하다”며 “전공·전문 용어가 아닌데도 수업 중간에 뜻을 묻는 학생들이 종종 있어 당황스럽다”고 했다. 이어 A교수는 “그럴 때면 혼내야 하는 건지, 설명해 줘야 하는 건지 애매하다”고 전했다.

실제 한국어 뜻을 묻는 질문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네이버에 따르면 지난 8월 21일 배우 구혜선·안재현씨 부부의 불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실검에 오른 ‘주취’를 비롯해 △금명간(3월18일) △숙환(4월 8일) △양성·음성(2월28일) △대외비(1월26일) 등의 단어가 실시간으로 많이 검색됐다.

기본적인 맞춤법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8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성인 남녀 3862명을 대상으로 ‘맞춤법 인식’을 조사한 결과, 맞춤법에 자신있다고 응답한 성인은 41.6%에 불과했다. △‘보통’ 45.3% △‘그렇지 않다’ 11.5% △‘매우 그렇지 않다 1.6%로 집계됐다.

상황이 이렇자 대학 교수들도 맞춤법 교육에 신경쓰는 모양새다. 서울 4년제 대학의 B교수는 중간·기말 고사 시 맞춤법도 평가 요소에 넣기로 했다. B교수는 “띄어쓰기나 기본적인 모음 사용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며 “기본적인 소양을 기르자는 취지에서 국어 수업이 아닌데도 맞춤법도 평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어 능력 저하의 원인으로 영상 중심의 콘텐츠 소비 증가를 꼽으면서, 한국어 교육 전반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김용경 한국어교육학과협의회장은 “과거 활자 중심의 문화에서 유튜브 등 이미지·영상 콘텐츠 소비로 변화하고 있다”며 “단어가 아닌 그림을 보고 의미를 이해하거나 완전한 문장이 아닌 간략한 단어로만 의사소통하다 보니 한국어 능력이 점점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김 회장은 “특히 직접 문장을 만들고 단어를 체화시키는 쓰기 교육을 강화해야 한국어 실력을 키울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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