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NO, 재의요구권 YES'…용어 바로잡기' 나선 용산[통실호외]

'거부권'은 통칭, 헌법엔 '재의요구'
"거부권, 적법절차에 부정적 어감"
尹대통령, 채 해병 특검법에 15번째 재의요구
  • 등록 2024-07-13 오전 11:00:00

    수정 2024-07-13 오전 11:00:00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거부권이 뭐야?” “우리나라 법에 거부권이란 게 있나?” 대통령실 관계자들에게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계획이냐’는 질문을 하면 돌아오는 답변이다. 이런 땐 ‘재의요구권’이란 헌법상 용어로 다시 질문해야 한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을 비롯한 정부가 ‘정명’(正名·이름을 바르게 하다) 운동에 나섰다. 야당이 수용할 수 없는 법안을 강행해 놓고 정부에 불통 ‘프레임’을 씌우려 한다는 인식이 이런 움직임 배경이다. 다만 이 같은 프레임을 의식한다는 것 자체가 재의요구권 혹은 거부권 행사에 대한 대통령실과 정부의 정치적 부담감을 보여준다.

“거부권은 대통령에 부정적 프레임 씌우는 용어”

헌법을 보면 대통령실 말이 맞다. 헌법 제53조 제2항은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제1항의 기간(15일)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재의요구권이란 용어가 나온 배경이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법안은 국회의원 과반이 출석한 본회의에서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재의결에 찬성하지 않으면 폐기된다. 이 같은 까다로운 요건 탓에 대통령이 법안을 재의 요구한다는 건 그 법안을 수용하길 거부, 폐기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거부권이란 통칭이 붙은 이유다. 1948년 10월 3일 이승만 전 대통령이 양곡매입법에 대한민국 역사상 첫 재의 요구권을 행사했을 때도 언론에선 이를 거부권이라고 불렀다.(이 법은 사흘 후 법안 수정과 재의결을 거쳐 가결됐다)

최근 들어 대통령실과 정부는 재의 요구권과 거부권을 구분하려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법에는 거부권이란 용어가 없다. 거부권은 대통령에게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야당이 쓰는 용어다”며 “법률적으로 재의요구권이란 표현을 쓰는 게 맞다”고 말했다.법무부도 지난달 “언론 기사에서 대통령의 거부권과 재의요구권이라는 용어가 혼재돼 사용되고 있다”며 “거부권이라는 용어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적법한 입법 절차인 재의요구권에 대해 자칫 부정적인 어감을 더할 수 있는 측면이 있어 말씀드린다”는 문자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다만 이 같은 용어 바로잡기는 대통령실도 재의요구권 행사에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8일 해병대원 순직 사건 특별검사 임명법(채 해병 특검법)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15번째 재의요구권 행사다.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 횟수는 역대 대통령 중 이승만 전 대통령(12년 재임 중 45회) 다음으로 많다.

22대 국회서도 거부권 정국 이어질 듯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민주당은 11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전세사기특별법 등 윤 대통령이 21대 국회에서 재의요구권을 행사, 폐기됐던 법안들을 22대 국회에서 당론으로 채택해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역시 21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통해 폐기됐던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과 ‘지속 가능한 한우산업을 위한 지원법안’(한우법)도 야당 주도로 재입법 절차를 밟고 있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필요하다면 재의요구권 행사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기조다.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지난달 국회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법안에 대통령은 당연히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위헌 사항이 분명한 데도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 안 한다는 건 대통령의 직무 유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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