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②올림픽이 만든 잠실…강남 3구의 탄생

  • 등록 2018-02-17 오전 10:00:00

    수정 2018-02-17 오후 5:22:25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45년 전만 하더라도 석촌호수는 원래 호수가 아니라 물이 흐르는 강이었다. 본래 한강은 두 개의 물 흐름이 있었는데 본류는 지금의 석촌호수를 지나던 송파강이고 지류는 지금의 한강 본류가 된 신천강이다.

송파강과 신천강이 갈라져 큰 섬인 잠실섬과 그 남서 쪽에 작은 부리섬을 만들었다. 또 잠실섬 왼쪽에는 무동이라는 작은 섬이 한강 수량이 변화에 따라 생겼다가 사라지곤 했다고 한다.

잠실섬과 부리섬이 육지가 된 것은 1971년 한강 공유수면 매립사업 때문이었다. 한강 본류인 송파강을 메워 잠실섬을 육지로 만들고 잠실섬 북쪽은 흙을 파내 가라앉혀 신천강 폭을 넓히면서 강북과 가까웠던 잠실이 강남 쪽으로 편입된 것 역시 이때다.

1970년대 서울도시계획의 주역이자 개발의 산 증인이었던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책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서 한강 공유수면 매립사업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서울시는 1969년 1월 건설부에 공유수면매립인가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여러 이유를 들며 서류를 반려하거나 회신을 미루던 건설부가 70년 중반 ‘이 사업은 민자로 하는 게 바람직함’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정부가 정치자금을 내는 조건으로 대형 건설사들에 잠실지구 매립사업권을 약속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현대·대림·극동·삼부·동아 기업 등이 참여해 물막이 공사가 시작됐다.

마침내 매립공사가 완료되며 248만 8200㎡의 잠실 땅이 탄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땅에 국제 규모의 체육시설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당시 서울은 1970년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확정됐지만 국제적인 행사를 치를 만한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개최권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고 대신 방콕이 1966년에 이어 연속으로 아시안게임을 치뤘다. 정부로서는 치욕을 만회할만한 중점 사업이었던 것이다. .

이에 잠실 주변 터까지 합쳐 1122만㎡의 넓은 땅에 5개 단지 규모의 잠실아파트와 잠실종합운동장을 만드는 잠실지구종합개발계획 사업이 추진된다. 1974년 12월 잠실은 구획정리지구로 지정됐고 서울시는 154만 2558㎡은 체비지로 만든 다음 125만 4000㎡은 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양도하고 나머지는 서울시의 아파트 건립지구로 지정했다. 서울시는 잠실시영아파트 119개 동 4520가구를 건립했고 주택공사는 125만 4000㎡ 중 56만 1000㎡ 규모 토지를 4개 지구로 나눠 잠실주공 1·2·3·4단지 1만 1660여가구를 건설했다.

△구자춘 서울시장이 1975년 1월 잠실 시영아파트 제 2차분 기공식에 참석하였다. 이날 기공된 2차분은 잠실구획정리지구 제 2단지 13평형 41동 1500가구의 아파트였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하더라도 잠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강남’이라는 범주에 편입되지 못했다. 잠실, 송파 일대를 강남으로 합류할 수 있게 한 주인공은 아시아선수촌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이다. 두 아파트는 선수들이 머물 숙소뿐만 아니라 국제행사를 치를 비용을 충당하는 역할도 했다. 바로 88서울올림픽 성금 모금을 위해 기존주택공급규칙을 개정해 기부금 낙찰제를 도입한 것이다. 먼저 내정가를 정한 뒤 기부금 순서대로 희망하는 동·호수를 배정하는 방식이었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가 먼저 완공됐다. 이 아파트는 강남구 대치동과 가까워 입지가 좋을 뿐만 아니라 150%의 낮은 용적률 9층부터 18층까지 대각선 방향으로 내려오며 성냥갑 같은 판에 박은 듯한 꼴을 벗어난 대단지 아파트, 66만㎡이나 되는 공원을 앞마당에 둔 대한민국 최고의 웰빙 아파트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필로티 아파트인데다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57평형과 66평형에는 지하주차장까지 제공했다.

△1986년 아시아선수촌과 잠실올림픽경기장 전경[사진=서울사진아카이브 제공]
△올림픽 선수촌 설계작품 조감도 [그림=서울사진아카이브 제공]
그 후에 들어선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는 더욱 커진 대회 규모 만큼이나 더욱 커졌다. 대지 면적만 20만평에 달했고 세대수는 25평형에서 64평형까지 122개 동, 5540가구에 이르렀다. U자형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한 방사형 배치는 남향 지상주의라는 기존 관념을 깨고 조망권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배치였다. 지하주차장을 거의 전 가구에 제공하고 복층형 아파트가 들어선 최초의 대단지였다. 단지 안에는 유치원이 두 곳, 오륜초등학교와 세륜초등학교, 오륜중학교, 그리고 전통 명문인 보성중·고등학교와 창덕여자고등학교가 강북 도심에서 이전해 자리잡았다. 단지 안에 모든 학군이 갖춰져 있다는 것은 굉장한 강점이었고 올림픽선수촌에 대한 선호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1984년 12월 10일 매일경제 <투기 우려되는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기사를 보면 당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기사는 “돈 놓고 돈 먹는 아파트”라며 “가장 규모가 큰 66평을 경우 7당 6낙(7當6落)이라 7000만원 기부금을 내면 당첨되고 6000만원으로는 낙첨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뜨거웠던 청약 열기와 달리 실제 분양이 완료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정부가 세무조사 방침 등 강력한 투기 단속에 나서자 계약자들이 잇달아 포기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두 아파트의 등장은 잠실·송파 일대를 강남권으로 편입시키는 강력한 모멘텀이었다. 1988년 1월 1일 서울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강동구에서 송파구가 분리된 것 역시 이때다. 같은 기간 서초구가 강남구에서 분리되며 흔히 말하는 ‘강남 3구’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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