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웅의 블토경]블록체인 토큰에 경제학이 필요한 이유

  • 등록 2018-10-30 오전 7:30:00

    수정 2018-11-19 오전 9:54:53



암호화폐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고 정부 규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면서 토큰 이코노미를 접목시킨 다양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생태계와 그 생태계가 작동하게 만드는 토큰 이코노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길잡이가 절실합니다. 이에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해외송금 프로젝트인 레밋(Remiit)을 이끌고 있는 정재웅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수석 토큰 이코노미스트가 들려주는 칼럼 ‘블(록체인)토(큰)경(제)’을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정재웅 레밋 CFO] 2017년 9월부터 올해 9월까지 암호화폐 시장은 급격한 가격 변동을 겪었다. 암호화폐의 대표주자인 비트코인의 경우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작년 12월16일에는 역사상 최고가인 1만9497.4달러를 기록했지만, 10개월 후인 올해 10월25일 현재 6476.29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이러한 높은 가격 변동성은 암호화폐시장의 리스크가 높음을 보여준다. 금융시장에 있어 리스크는 곧 가격 변동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주식시장 폭락과는 반대로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장은 안정적인 가격 변동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암호화폐가 안정적인 자산이 아니라 역으로 암호화폐시장의 투자심리가 완전히 얼어붙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상술한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높은 역사적 가격 변동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분명 사토시 나카모토가 백서를 통해 밝힌 비트코인의 비전은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개인 간 송금 및 지급결제를 할 수 있는 안정적인 가치를 지닌 화폐에 준하는 매개체를 제시하는 것이었지만 현재 모습은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비록 지금은 자본시장 대비 상대적으로 안정된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높은 변동성은 암호화폐가 지닌 약점 중 하나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에서 한국이 이미 경험한 바 있듯이 화폐의 높은 변동성은 나쁜 신호다.

그렇다면 왜 화폐의 높은 변동성은 나쁜 신호인가. 한 경제 체제 내에서 화폐는 다음과 같은 네 기능을 수행한다. 가치의 척도, 가치의 저장, 교환의 매개, 그리고 국가 지불의 수단. 화폐를 통해 우리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측정하고, 현재의 부를 미래로 이전하며, 재화와 서비스를 거래하고, 국가에 세금을 납부한다. 이러한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화폐는 중앙은행에 의해 발행되고, 정부와 중앙은행은 화폐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단순히 정부와 중앙은행이 발행해서 법정화폐를 신뢰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발행에 더해 가치 안정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법정화폐를 신뢰하고 사용한다. 만약 이러한 가치 안정이 보장되지 않으면 법정화폐를 사용할 유인이 없다. 역사적인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 법정 화폐가 그 좋은 예다.

문제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에는 이러한 가치 안정을 보장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백서에 총 발행량은 2100만 코인으로 제한하며 각 코인이 미세하게 작은 단위로 나뉘어질 수 있다는 기술적 측면의 설명은 제시했지만 왜 코인 발행량은 제한되어야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각 코인이 미세하게 작은 단위로 나뉘어지는지, 그리고 코인의 구체적 사용과 그 가치 안정 메커니즘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이더리움을 비롯한 그 이후 발행된 블록체인 토큰들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가치 안정화에 대한 설명이 없는 암호화폐는 미래 가치 상승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혹은 장차 법정화폐를 대신할 수 있으리라는 사람들의 기대로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했고 그 기대가 변하면서 가격이 하락했다. 물론 폴 새뮤엘슨이나 루카스 앤 스토키 같은 경제학자들은 그들의 연구에서 화폐는 자체 가치가 없지만 그 화폐가 공급하는 미래 유동성의 그림자 가격의 현재가치가 곧 화폐의 가치가 되기 때문에 화폐 가격에는 근본적으로 거품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이론을 전개한 바 있다. 이러한 연구에 근거해서 본다면 암호화폐 가격은 사람들이 장차 그 암호화폐가 미래에 공급할 것이라 예상하는 유동성의 그림자 가격의 현재 가치이기 때문에 거품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학 이론도 암호화폐의 높은 가격 변동성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제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람들의 기대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암호화폐의 높은 가격 변동은 암호화폐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분적으로 통화 역할을 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지는 동시에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투자자산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법정화폐 경제에서도 안전자산으로서 달러에 대한 투자 혹은 시세차익을 노린 핫머니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암호화폐시장에서는 이러한 투자자들의 행동이 더 일반적이고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차이는 화폐 가치 안정화 노력을 하는 권위있는 중앙기관 없이 시장 참여자들 간 자율적인 합의에 가치 안정화가 이루어지는 암호화폐 특유의 탈중앙화가 큰 이유가 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암호화폐시장에 경제학 논리를 적용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권위있는 중앙기관이 없다는 사실은 역으로 그만큼 세심하게 시장참여자들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인할 경제학적 이론이 필요함을 증명한다. 1996년 윌리엄 비커리와 제임스 밀리스는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바람직한 행동 유인에 대한 연구`에 대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암호화폐 시장 역시 정보가 비대칭한 시장임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연구를 적용하여 시장 참여자들의 바람직한 행동을 유인하는 메커니즘을 설계할 수 있고, 그렇다면 이를 통해 암호화폐 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을 제어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는 곧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를 대신하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현실 경제에서 법정화폐와 공존하며 하나의 보조적인 지급결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암호화폐시장의 문제는 내재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격 변동성을 통제하고 시장참여자들의 바람직한 행동을 유인할 권위있는 중앙기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암호화폐에 경제학 이론의 적용이 필요한 이유가 생긴다. 암호화폐시장이야말로 경제학 이론의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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