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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소설 ‘채식주의자’ 중 영혜의 말).
16일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집 ‘채식주의자’(영문명 ‘더 베지테어리언’)는 2007년 국내서 출간했다. 출판사 창비에서 나온 ‘채식주의자’는 동명의 표제작과 함께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으로 구성했다. 작가가 2002년부터 2005년 여름까지 쓴 세 편의 중편소설은 각각의 이야기를 지녔지만 합치면 장편소설이 되는 구조다.
△ 세 편의 중편, 하나로 이어져 장편으로 완성
세 편의 중편 중 하나인 ‘채식주의자’는 어린시절 개에게 물린 트라우마로 인해 육식을 거부하는 아내인 영혜를 바라보는 남편 ‘나’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인 비디오아티스트 민호가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몽고반점이 남아 있는 처제인 영혜의 몸에 보디페인팅을 하다가 육체의 선을 넘는 과정을 그렸다 . ‘나무 불꽃’은 모든 음식을 거부한 채 마치 나뭇가지처럼 말라가는 영혜의 모습을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시선으로 그렸다.
맨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채식주의자’를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으로 선정하며 “한 평범한 여성이 자신의 집과 가족, 사회를 묶는 모든 관습을 거부하는 과정을 간결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담아냈다”며 “서정적이면서 동시에 날카로운 스타일의 소설이 독자의 마음과 꿈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수상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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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방의 한국문학, 세계문학에 입장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은 한국문학이 비로소 ‘한국어로 쓴 한국문학’의 좁은 틀을 벗고 세계문학이란 보편적인 흐름에 진입했다는 적지않은 의미를 가진다.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이문열·황석영 등의 작품을 영어와 불어로 번역하면서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의 문을 두드려 왔다”며 “이제 한국문학이 변방의 문학이 아니라 세계문학의 일원이자 개성적인 세계문학으로 읽혀야 하는 시기가 왔고 한강의 수상은 그 신호”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채식주의자’ 침체 빠진 한국소설 끌어올릴까
17일 ‘채식주의자’의 수상소식이 알려지자 독자들은 대단히 빠르게 반응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와 알라딘에서는 불과 반나절 사이에 전일 대비 10배가 넘는 ‘채식주의자’가 팔려나갔다. 알라딘의 경우 1초당 7권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표절 파동 이후 한국소설을 찾는 독자가 많이 줄어들었던 상황에서 한강의 수상은 독자가 한국소설을 다시 찾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최근 신작 ‘종의 기원’을 낸 정유정 작가와 더불어 서점가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채식주의자’의 해외판권을 맡았던 이구용 케이엘매니지먼트 대표는 “한강은 폭력이나 억압을 일상적으로 그리는 대신 육식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면서 외국의 독자와 평론가에게도 차별화한 인상을 남겼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외국 출판사들이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채식주의자’는 현재 25개국에서 번역·출판했고 앞으로도 더 많은 국가에서 출간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문학이 세계로 진출해 더 많은 독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좋은 번역가를 양성하고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