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개막한 연극 <유리동물원>은 ‘고전은 꼭 봐야 한다’는 명제를 증명한다. 개성 만점의 현대물이나, 인기 배우가 나오는 화제작들 사이에 낀 고전극을 보면서 원래 '연극은 무엇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유리동물원>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등을 쓴 미국 극작가 테네시 월리엄스가 1944년 발표한 작품으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1930년대 미국 경제 공황기를 배경으로 배경으로 과거의 영광에 매여 사는 남부 귀족 출신 엄마 아만다와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에 한쪽 다리를 절며 집에만 틀혀 박혀 유리로 만든 동물을 돌보며 지내는 딸 로라, 시인을 꿈꾸며 직장인 창고에서 언젠가는 벗어나길 희망하는 아들 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가 부재하는 윙필드 가족은 아들 톰이 창고에서 벌어오는 수입으로 살아간다. 톰은 매일 아침 엄마의 재촉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출근한다. 엄마 아만다는 수줍음 많은 딸 로라가 노처녀로 늙어 죽을까 노심초사하지만 로라는 “난 절름발이인걸.”이라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이들은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이지만 각자의 꿈에 사로잡혀 산다. 로라는 본인이 수집한 유리 동물 공예품들에만 빠져 있고, 아만다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영광을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고, 톰은 영화관과 술집 찾아 밤거리를 헤맨다. 그 꿈을 통해 어두운 현실을 애써 부정하지만 그 꿈은 현실을 대체하거나 충족시켜 줄 수가 없다. 이 집의 구원자로 등장한 로라의 첫사랑이자 톰의 직장 동료 짐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밝은 미래를 확신하지만, 그도 한낱 창고에서 일하는 사무직 직원이며 애인에게 쩔쩔 매는 남자일 뿐이다. 그가 기념품으로 가져간 뿔 없는 유니콘은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과 똑같다.
이 작품은 1930년대 우울한 가족의 초상을 지금 여기로 불러오지만, 현재의 모습과도 닮은 듯 다른 가족의 모습을 통해 씁쓸하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위안도 준다. 연극의 정석을 보여주는 작품답게 4명의 배우들 모두 그 연기에 찬사를 보낼만 하다. 또한 장면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첼로 선율이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명동예술극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