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富)의 이전에 대해 과세하자고 하는데 `전혀 다른 측면의 생각`을 떨칠 수가 없네요."
지난 5일 `일감 몰아주기 과세방안`을 주제로 한 한국조세연구원 주최의 정책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한상국 전북대 교수의 말이다. 한 교수가 말한 `전혀 다른 측면의 생각`이란 것은 대만의 사례를 말한다.
대만은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조세분야에서 큰 조치를 취했다. 법인세율을 17%로 낮췄고 상속증여세(이하 상증세) 세율을 우리나라와 같은 50%에서 10%로 대폭 내렸다. 젊은 세대에 부를 넘겨 경제를 발전시키자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이뤄졌다는 게 감세의 배경이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상증세율 50%를 소득세율(6~35%)만큼 인하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현재도 국회 계류 중이다.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아예 `상증세를 폐지하자`고까지 했다.
그러나 지난해 정부가 공정사회를 정책기조로 내세우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모회사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자회사 주주(모회사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것을 `변칙증여`로 보고 증여세를 과세해야 한다는 정부의 의견이 제시됐다. 상증세 최고세율이 소득세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시된 방안은 사실상 세금이 아니라 벌금에 가까웠다. 얼마를 벌었는지 정확히 계산하기도 어려웠고,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대해 세금을 내라는 방안도 제시됐다. 자칫 세금을 내는 것이 무언가 잘못해서 내는 것처럼 인식될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조세저항이 커진다는 것은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부담에도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조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역할을 강화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초기에 제시됐던 감세를 통한 경제활성화라는 조세정책의 방향은 변할 것일까? 아쉽게도 그동안 그러한 컨센서스는 없었다. 아직도 국회에 상증세율을 소득세율만큼 내리자는 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고, 정부는 여전히 공식적으론 소득세, 법인세 감세정책을 주장한다.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 변화에 맞춰 정책방향이 오락가락하니 여론에 민감한 조세정책도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조세정책이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때다. 그것이 벌금에 가까운 세금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