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 박모(60)씨는 “남들은 집값 올라 좋겠다지만, 뭘 모르는 소리”라고 말한다. 지난 2000년 서울 강남 대치동에 3억원을 주고 샀던 아파트(40평)가 최근 12억원을 훌쩍 넘은 것. 하지만 내년부터 보유세만 매년 700만원 이상을 내야 한다. 그는 “팔면 양도세만 1억5000만원이고, 남은 돈으로 작은 집 마련하고, 죽을 때까지 버텨야 할 판”이라며 “1가구 1주택자를 투기꾼 취급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어디 있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뒤통수 맞은 실수요자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에 국민들의 시름이 깊어만 가고 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집값은 잡겠다”던 구호를 믿었던 무(無)주택자에겐 내 집 마련의 꿈이 정말 꿈이 됐다. 지난 7월 일산에서 집을 사려다가 말았다는 이모(36·경기 용인)씨는 “8월 판교 분양에 당첨될 걸로 믿었다가 결국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금 폭탄’에 숨어버린 매물
◆무차별 투기 규제에 우는 지방
부동산 투기를 찾기 힘든 지방도 무차별적인 투기 억제 대책에 골병이 들고 있다. 정부는 2003년 이후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 등을 남발했다. 주택과 토지 투기지역은 전 국토의 30%가 넘게 지정돼 있고, 토지거래허가구역은 21%를 웃돈다. 사상 최대의 미분양에 시달리는 지방 6대 광역시마저 투기과열지구로 꽁꽁 묶여 있다. 부산의 S공인중개사 경모 사장은 “각종 규제로 시장이 얼어붙어 새 아파트로 들어갈 사람 중 20~30%는 기존 집을 처분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명분에 얽매이지 말고, 시장 기능의 정상화를 위해 투기 억제 제도를 지역별로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명분에 집착하고 있다’며 ‘시장 안정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 투자자문사 ‘저스트알’ 김우희 상무는 “정부가 시장의 반응을 무시한 채 ‘내가 옳은데 왜 그러느냐’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결과”라고 지적했다.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조주현 원장은 “실패로 결론 난 ‘묻지마 규제’ 위주의 정책 대신 ‘햇볕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코리아베스트’ 주용철 세무사는 “시장에 매물을 유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양도세 완화 조치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외국선 은퇴 세대에 세제혜택
우리 정부가 부동산 세제개혁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미국에서는 양도세 감면 혜택이 훨씬 크다. 주택을 5년 이상 보유하고 2년 이상 거주할 경우, 부부 합산 50만 달러(5억원 정도)의 양도세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다주택자라고 해서 특별한 불이익을 주지는 않는다. 특히 은퇴세대들에게는 보유세 감면혜택도 주고 있다. 독일은 장기보유 주택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양도소득을 비과세하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박용석 연구위원은 “선진국은 장기보유 등에 대해 다양한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며 “60세 이상 은퇴세대에 대해서는 보유세와 양도세 감면혜택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