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코카콜라사(社)는 코카콜라를 직접 제조하지 않는다. 지역의 병입(甁入·병에 액체를 넣음) 회사, 일명 보틀러와 계약을 맺고 원액만 공급한다. 보틀러는 원액을 가공해 코카콜라를 제조·유통·판매한다. 한국은 LG생활건강이 보틀러다.
코카콜라사 본사가 있는 미국 영토가 너무 넓은 탓에 고안한 방식이다. 전역에 제조 시설을 두고 코카콜라를 직접 제조 및 판매하기에는 비용과 시간이 들었다. 하물며 세계에서 판매하는 일은 더 힘들었을 테다. 보틀링 시스템은 코카콜라를 대중화한 발판이 됐다.
이런 방식은 20세기 초반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독일인은 미국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코카콜라를 많이 마셨다. 현지에서 보틀링 시스템이 정착해 기반을 다진 덕으로 풀이된다. 독일 현지에는 코카콜라 제조 공장만 43곳이나 됐다. 코카콜라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공식 후원사로서도 독일인에게 사랑받았다.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후원사 코카콜라. |
|
2차 세계 대전(1939~1945년)이 발발하고 보틀링 시스템은 타격을 받았다. 미국이 전쟁 상대국 독일과 무역을 중단한 것이다. 당연히 미국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코카콜라사도 독일로 원액을 수출하지 못했다. 전쟁 초기에는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이 1941년 진주만을 폭격한 데 반발하고 미국이 참전하면서 일이 꼬였다.
기업으로서는 낭패였다. 외교 문제가 불거지면 현지에 진출한 회사도 타격이 불가피한데 급기야 전쟁까지 벌어진 것이다. 독일 나치는 미국 기업의 재산을 압류하는 조처를 단행했다. 이를 계기로 제너럴모터스는 독일 사업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코카콜라 독일 지사도 처지가 궁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독일이 세계 2위의 코카콜라 소비국이라는 데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코카콜라는 독일인 너나 할 것 없이 즐겼으니 나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구전에 따르면 아돌프 히틀러는 미국 영화를 보면서 코카콜라를 마시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전쟁 탓에 코카콜라를 마시지 못하는 것은 민심을 다스리기에도 불리했다. 정권이 원하고 대중이 바라기에 코카콜라를 대체할 청량음료가 필요했다.
| 코카콜라 독일지사에서 만든 환타의 광고 포스터.(사진=코카콜라) |
|
그렇게 등장한 게 환타(Fanta)다. 독일의 코카콜라 지사장 막스 카이트(Max Keith)가 주도해서 사탕무와 유청 등을 조달해 완성했다. 제품명은 독일어로 환상(Fantasie)에서 이름을 따왔다. 환타는 1943년 독일에서 300만 병이 팔릴 만큼 인기를 끌었다. 설탕이 부족해 요리에 단맛을 가미하려는 수요도 컸다.
전쟁이 끝나고 환타는 단종했다. 표면적으로는 독일로 코카콜라 원액이 수입되기 시작했으니 대체품이 더는 필요하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호사가들은 환타가 나치의 음료 탓이라고 꼽았다. 전범 나치가 만든 음료라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코카콜라가 손절한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다 1955년 이탈리아 보틀러를 통해 환타를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때 환타의 원조격인 오렌지 맛 환타가 처음 나왔다. 경쟁자 펩시가 여러 음료를 내고 추격하는 데 대항하는 차원이었다. 이후 환타는 코카콜라사의 음료 라인업 중추로 자리하게 된다. 코카콜라사의 사이다 스프라이트(Sprite)는 독일 환타 레몬(Fanta Klare Zitrone)에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