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계의 이재용 부회장 선처 호소, 귀 기울일 만하다

  • 등록 2021-01-20 오전 6:00:00

    수정 2021-01-20 오전 6:00:0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해 4년 넘게 수사와 재판을 받은 끝에 그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고법 형사합의1부(재판장 정준영)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심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서원(최순실)씨측에 회삿돈 86억 8000만원을 뇌물로 건넨 혐의다.

지난해 10월 이건희 회장 타계 이후 실질적 리더였던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삼성은 다시 ‘총수 부재’라는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됐다. 당장 180조원 규모의 투자, 4만명 채용 등 ‘뉴 삼성’의 비전 실행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시스템반도체와 인공지능(AI), 5세대(5G)이동통신 등 신사업 분야의 대규모 인수합병(M&A)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조 단위 규모의 거래인 대형 M&A는 총수의 판단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엔비디아 등 글로벌 경쟁사들이 앞다퉈 유망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어 삼성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코스피 시가총액 4분의 1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비중과 글로벌 위상 등을 감안할 때 ‘총수 부재’는 개별 기업을 넘어 한국 경제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이 재판 전부터 탄원서를 제출하고 판결 직후 전경련과 경총 등 경제단체와 재계가 일제히 선처를 호소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조건으로 ‘과거 잘못과 재판 결과 인정 및 국민 공감대 형성’ 등을 꼽았다. 이같은 기준에서 본다면 이 부회장의 행보는 사면 조건을 충족한다는게 재계의 시각이다. 그는 과거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하면서 경영 승계 포기와 무노조 경영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킨데 이어 최고 수준의 투명성을 갖춘 회사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이 부회장을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달라는 청원에 19일 오후 4시 현재 6만7천명이 넘는 사람이 참가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부의 결단이다. 법의 적용과 집행은 정부의 고유 권한이지만 재계의 속은 이 순간에도 타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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