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일대. 신규 아파트 사이로 낡은 다가구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신길 재정비촉진구역(뉴타운)에서 대림동 방향 길 건너편에는 조합원 모집을 위한 사무실과 지구단위 동의서 접수를 위한 컨테이너박스가 눈에 띈다. 현수막에는 “지역개발은 주민 스스로 참여해야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재건축·재개발 등 일반 정비사업이 아닌 지역주택조합(지주택) 사업 현장이다.
|
19일 서울시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진행 중인 지주택 사업장(8월 기준)은 모두 73곳으로 이 중 절반 이상인 41곳은 조합원 모집신고 단계에 머물러 있다. 지주택 사업은 일정 자격을 갖춘 이들이 모여 조합을 설립하고 사업대상지의 토지를 확보해 공동으로 아파트는 짓는 사업이다. 일반 아파트와 비교해 20%가량 싼값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토지확보가 쉽지 않다.
관악구 봉천동의 편백숲1·2차, 구로구 구로동 지주택은 5년 넘게 조합원 모집 상태다. 사업진행이 오랫동안 정체됐거나 구청에서 불가 판정을 내린 곳도 10곳으로 전체의 14%나 된다. 최근 5년간 서울에서 진행된 지주택 사업 가운데 첫 삽을 뜬 비율은 4%(3곳) 수준이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활발한 신길뉴타운 주변에도 지역주택조합(지주택) 사업을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신길동에선 총 7곳이 지주택 사업장으로 등록돼 있다. 다만 이들 중 한 곳도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곳이 없다. 충분한 토지확보를 못 해서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해당 지주택 사업이 ‘사기 아니냐’는 문의 전화를 매일 받는다”며 “지주택 사업은 토지 확보가 관건인데 조합원이라도 정확한 토지확보율을 알 수 없어 착공 전까지 성공 여부(아파트 분양)를 단언할 수 없다”고 했다.
내년 조합 설립추진? 토지주는 “안 팔아”
지주택사업은 조합원 모집(토지확보율 50% 이상)→조합설립인가(토지확보율 80% 이상)→사업계획승인(토지확보율 95% 이상)→착공 순으로 이어진다. 조합원 모집 요건은 2017년6월부터 개정 주택법이 시행되면서 해당 주택건설대지의 50% 이상의 토지사용권원을 확보한 후 시군구청에 신고해야 지주택 추진위원회가 조합원을 모집할 수 있다.
다만 개정 주택법 시행 전 조합원 모집을 시작한 지주택 추진위는 신고 요건이 따로 없다. 이 때문에 50% 이상 토지가 확보됐는지조차 그 여부를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 2017년4월부터 조합원 모집을 시작한 신길동 N지주택 추진위에 따르면 토지 확보율이 42.6%에 불과하다. 3년째 조합원 모집 요건조차 채우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도 내년 말 조합 설립을 목표로 한다고 홍보하면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변 반응은 회의적이다. 신길동 A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는 “옆 동네 지주택 사업도 2015년 시작했지만 아직 조합설립 승인을 받지 못했다”며 “뉴타운 개발로 신길동 땅값이 크게 올라 토지확보 비용이 더 커진다는 점 등에 비춰보면 N추진위의 내년 말 조합설립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탈퇴시 계약금 일부 환급…가입 신중해야
사업이 지연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선 탈퇴(계약금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반적으로 계약금 환급은 가입계약서(조합규약)에 의해 업무추진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환급하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원의 탈퇴는 임의탈퇴는 원칙적으로 불허하고 부득이한 사유가 발생해 탈퇴하고자 한다면 업무추진비를 제외한 금액을 지불한다”며 “보통 5000만원의 계약금을 냈다면 50% 정도를 업무추진비 등으로 제한다”고 했다. 다만 이 조차 환급해주지 않아 법정 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
국토교통부에서는 지주택 사업의 유의사항으로 사업 추진과정상 토지매입, 공사비, 사업계획변경 등에 따른 추가 분담금 발생 요인이 많고 토지 미확보, 기반시설 부족, 내부 분쟁 등으로 사업기간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사업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면 조합원의 재산상 손실 우려가 크고 사업추진 과정의 모든 책임은 조합원이 지게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