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마켓워치]<12>`매출 제로` 니콜라 기적 만든 스팩(SPAC)

5년간 매출 없던 니콜라, IPO 후 포드 시총 앞질러
벡토IQ 역합병 통한 스팩 IPO로 나스닥시장에 데뷔
전통적 IPO 실패에 보다 확실한 스팩 IPO로 선회
`제품 양산 성공할까` 우려에도 시장 지지 받는 중
코로나에 스팩 활성화 기대…니콜라 성공여부가 변수
  • 등록 2020-06-23 오전 6:25:00

    수정 2020-06-23 오전 6:25:00

니콜라가 양상할 예정인 수소 연료전지 트럭 `니콜라 원`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최근 뉴욕증시에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창사 이래 5년 간 매출이 단 한 푼도 없던 비상장 기업이 하루 아침에 주식시장에 상장하게 된 것부터가 대단한 일인데, 이 회사는 한 번 충전으로 약 1920㎞를 갈 수 있는 수소 연료전지 트럭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만으로 116년이라는 엄청난 역사를 가진 미국 대표 자동차업체인 포드의 시가총액을 단 번에 추월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니콜라(Nicola)라는 회사입니다. 흥미로운 건 니콜라라는 회사명이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과 전류전쟁을 벌였던 천재 엔지니어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딴 것이고, 그 성을 딴 업체는 테슬라라는 겁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허무맹랑한 꿈처럼 들리던 전기차를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아치우고 있는 테슬라처럼 니콜라의 꿈도 머지 않아 현실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주가를 끌어 올리고 있는 겁니다. 지난 4일 나스닥에 상장한 니콜라 주가는 90%나 올랐고, 현재 시가총액은 238억달러(원화 약 28조8600억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런 니콜라의 주식시장 상장이 가능했던 건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라는 제도 덕이었습니다. 원래 비상장 기업이었던 니콜라는 지난 3월 초 스팩인 벡토(Vecto)IQ라는 스팩과 역합병(피합병사가 존속하고 합병한 스팩은 소멸하는 방식)함으로써 일종의 우회상장을 하게 됐습니다. 앞서 벡토IQ는 지난 2018년 5월에 스팩을 공모하면서 2억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끌어 모았습니다.

나스닥시장에서의 니콜라 주가 추이 (6월4일 이전은 스팩 주가)


스팩은 비상장기업 인수합병(M&A)를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로 세워집니다. 공모를 통해 액면가에 신주를 발행해 다수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은 뒤 증시에 상장해 3년 내에 비상장 우량기업을 합병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펀드를 청산해야 합니다. 일반투자자들은 스팩 주식을 사면서 기업 인수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스팩에 팔리는 기업은 그 자체로 증시에 상장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우회상장과 비슷하지만 스팩은 실제 사업이 없고 상장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긴 합니다.

아울러 스팩은 기업을 인수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샀다 팔아 시세 차익을 얻는 게 목적이라 기존 경영진을 대부분 유지하기 때문에 피인수 기업들로서도 거부감이 덜 합니다. 또 비상장기업 입장에서는 전통적인 기업공개(IPO)에 비해 1년 6개월~2년 정도 신속하게 상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실 니콜라는 작년 9월 우리나라의 한화와 독일 보쉬, 이탈리아 CNH인더스트리얼 등으로부터 시리즈D 투자를 5억달러 어치 따내며 30억달러에 이르는 몸값을 인정 받는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다만 이 정도로는 프로토 타입만을 가지고 있는 제품들을 양산하는데 충분치 않았습니다. 미국과 유럽을 겨냥해 전기배터리 트럭을 개발하고 있고, 2023년에는 수소 연료전지트럭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며 수소충전소를 기반으로 한 물류사업을 위해 2027년까지 미국과 캐나다에 수소충전소 800여개를 짓겠다는 게 회사의 목표였던 만큼 자연스레 IPO를 추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지난해 차량공유업체인 우버나 리프트 모두 IPO에서 쓴 맛을 본데다 공유오피스 위워크도 비즈니스 모델과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결함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매출이 없는 니콜라는 보다 확실한 IPO를 노렸고, 그 고민의 산물이 스팩이었던 겁니다. 괴짜 경영자인 리처드 브랜슨이 이끄는 우주관광회사 버진 갤럭틱이 소셜캐피털 헤도소피아라는 기존 상장사화 역합병해 뉴욕증시에 데뷔한 뒤 올해 40% 이상 주가가 뛰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때문이었죠.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습니다. 니콜라도 벡토IQ와의 역합병과정에서 주식 공모와 벡토IQ의 신탁계정으로부터 지원받은 현금 등을 합쳐 총 7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모으는데 성공했습니다.

올해 미국 증시에서의 월별 전통적인 IPO와 스팩을 통한 IPO 딜 규모 추이 (자료=블룸버그)


물론 니콜라가 목표로 한 제품들을 다 성공적으로 양산하게 될런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벌써부터 니콜라를 폄하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는 최근 “니콜라가 지난 2016년에 공개한 수소트럭 재원은 과장된 것이며 실제 이 트럭을 생산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니콜라의 주가에서 보듯이 시장 참가자들은 여전히 니콜라에 변함 없는 신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증권사 코웬(Cowen)의 제프리 오스본 애널리스트는 미국 증권사 중 처음으로 니콜라에 대한 투자의견을 냈는데, 첫 의견은 바로 `매수(Buy)`였습니다. 목표주가도 현 주가보다 25%나 더 높은 79달러로 매겼습니다. 더구나 3년 뒤에나 양산될 수소 연료전지트럭에 140억달러(원화 약 17조원)라는 천문학적 선주문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사실 니콜라의 매출이 완전히 제로(0)인 건 아닙니다. 태양광 설치로 48만2000달러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연구개발비 등에 쓴 돈만 1억547만달러였습니다. 보유현금은 많지 않고 트럭 양산을 위한 생산설비도 아주 소규모일 뿐입니다. 스팩 IPO로 펀딩한 자금도 2022년말 쯤이면 부족할 수 있다는 경영진의 전망도 있습니다. 결국 니콜라의 미래는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지금까지는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같은 니콜라의 성공적인 IPO 사례가 주목 받고 있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거대한 돌발 변수까지 겹치면서 스팩이 당분간 더 주목받을 것은 분명해 보이긴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장 투자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수요예측이나 투자설명회, 공모청약 등도 차질을 빚자 전 세계에서 전통적인 기업공개(IPO)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고, 그 공백을 스팩을 통한 IPO가 메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유례없이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고 있고 기록적인 실업과 주식시장 불안정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스타트업의 현재와 미래 가치나 사업 전망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전통적인 IPO가 제자리를 찾기 힘들 것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합병대상 기업과 합병시점, 조건 등에서 상당한 유연성을 가질 수 있는 스팩은 매력적인 IPO 방식이 될 수 있어 보입니다.

실제 글로벌 회계컨설팅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뉴욕증시 IPO 기업 가운데 스팩을 이용한 IPO가 지난해 30%에 이르렀습니다. 6년 전인 2013년의 4%에 비해 7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더구나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3월부터 5월까지 석 달간 스팩을 통한 IPO가 건수나 상장규모에서 모두 일반적인 IPO를 오히려 앞지르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국내에서도 비슷해 올 들어서만 지금껏 스팩과 합병해 증시에 상장한 코스닥 기업이 5곳에 이르고 있습니다.

에크레비야 사라프 나스닥 스팩부문 글로벌 헤드도 “제도적 금융에서 제 평가를 받기 힘든 파괴적 혁신이 가능한 기술 기업이나 미래지향적인 기업들이 스팩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니즈가 늘어날 것”이라고 점쳤습니다. 그리고 스팩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할 것이냐는 어느 정도 니콜라의 중장기적인 성공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