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돈 되는 미술 이야기]2019 홍콩 아트바젤의 중심에 선 한국 작가들, 그 세 번째 이야기

  • 등록 2019-05-18 오전 9:29:12

    수정 2019-05-18 오전 9:29:12

미술품에 투자하는 미술시장은 흔히 일부 선진국 부유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계층과 지역에서 여러 형태로 투자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시장 양상도 변화하는 모양새다. 국내에서는 최근 미술품에 대한 소액 부분 투자를 제공하는 ‘아트투게더’라는 서비스가 최근 문을 열고,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서비스 운영사인 투게더아트의 주송현 아트디렉터가 근래의 시장동향과 전망을 다룬 내용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한다.<편집자 주>

아트 바젤(Art Basel)은 해마다 개최되는 국제 아트 페어이며, 스위스 바젤(1970)을 시작으로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비치(Art Basel in Miami Beach, 2002)와 홍콩(Art Basel in Hong Kong, 2013)에서 개최되고 있다. 전 세계 유수의 갤러리들이 참여하는 아트바젤은 ‘예술계의 올림픽’ 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임시 박물관’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점차 그 규모를 확장해가고 있다.

지난 3월 올해로 7번째를 맞이한 2019 홍콩 아트바젤(Art Basel HK)은 미술애호가들과 외신 매체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다. 35개국에서 242개의 정상급 갤러리가 참여하여 1만 점의 작품을 판매했을 뿐 아니라, 5일간 열린 전시회 기간 동안 무려 8만 8천 명이 방문하였다고 한다.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으니 명실상부한 아시아를 대표하는 아트페어로 자리매김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번 2019 홍콩 아트바젤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며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에 본고를 시작으로 3회에 걸쳐 2019 홍콩 아트바젤을 통해 다시한번 미술사적 위상을 빛낸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전 세계 미술시장이 주목하는 설치 미술가, 이불 (1964~)

이불은 1964년 강원도 영월에서 출생하였다. 그녀의 부모는 좌익 정치 운동가였고 정부의 감시를 피해 도피하던 중 그를 낳았다. 독특함이 느껴지는 이름의 ‘이불’은 부친이 지어준 본명으로, 한자로 새벽, 동트는 불(?)을 쓴다. 공안당국의 철저한 감시 아래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도 없고, 외부 활동이 가능한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던 그녀의 부모는 가내수공업을 하며 험난하고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다.

좌익사범 연좌제에서 가장 자유로운 직업이 예술가였기에 어릴 적부터 작가의 꿈을 키워온 이불은 과학과 그림 등 모든 방면에 뛰어난 천재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를 동경하게 된다. 이후 홍익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하였고, 연극부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예술적 탐색을 통해 작가적 정체성을 구체화하였다.

이불이 갓 대학을 졸업한 시점(1987년)의 국내 미술계 상황은 민주화 운동과 궤를 같이 한 사회변혁운동인 민중미술과 모노크롬 회화로 대변되는 모더니즘 계열로 양분되어 있었다. 각기 다른 경향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가능성이 닫힌 정설이자 죽은 관습으로만 여겨졌다. 가령 민중미술과 관련된 주제들은 불화나 민화 등의 전통을 차용하거나 선동적인 문구를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표출하였다.

반면에 이불은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정치적 의식을 일상의 재료와 다양한 표현방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를 원하였고, 내면의 예술적 욕망과 이념을 분출하기에 적합한 형태와 방법을 퍼포먼스에서 발견하게 된다. 조각 작업의 연장이기도 한 초기의 퍼포먼스는 당시 미술계의 이분법적 구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선사해주었고 현장으로 나가 관객들의 참여와 소통을 이끌어내는 데 용이한 수단이 되었다.

-다양한 조형언어 탐색을 통한 독창적인 예술세계 구축

당시 한국에서는 돌이나 철(steel)같은 재료를 조각의 주매체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한 재료들은 조각에 있어서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원불멸의 개념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반면 자신만의 차별화된 매체를 찾던 이불은 1987년 개최된 <뮤지엄>전을 시작으로 유동적인 형태를 만들 수 있는 부드러운 재료들(패브릭, 기포 고무, 시퀸)을 적극 활용하여 작품을 제작하였다.

“처음에 제가 패브릭이나 기포 고무, 시퀸 등을 사용한 것이 관례나 전통과의 관계를 의식적으로 끊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수작업과 밀접한 그 재료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들은 결국 제게 개인적인 경험, 기억과 꿈으로부터 나오는 유기체같은, 때로는 환상적이고 상상적인 형태를 실험하는 것을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이불이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직접 연출하고 공연한 퍼포먼스를 통해서였다. 나체로 천정에 매달리거나 괴물같은 분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여 신선한 감동과 기괴한 충격으로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이다.

‘Sorry for suffering ? You think I‘m a puppy on a picnic?’, 1990
위의 퍼포먼스 ‘Sorry for suffering ? You think I’m a puppy on a picnic?’은 관습적인 여성상을 비판하는 형이하학적이고 풍자적인 시도로서 그로테스크(grotesque)한 신체를 적나라하게 표현하여 부권 중심의 사회에 페미니즘적인 대응을 한 작품이다. 이불이 직접 만든 괴물 의상과 여타의 소도구들은 현재까지 지속되는 부드러운 재료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보여 준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1996년까지만 이루어졌는데 많은 인원을 동원해야 하는 부담감과 함께 그녀가 의도한 대로 깊이 있는 이해와 참여를 끌어들이는 퍼포먼스가 아닌 외형적인 요소만 부각되는 결과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The visible pumping heart Ⅱ’, 1994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의 육체와 여성성을 탐구한 이불의 예술세계는 점차 성과 젠더의 문제를 넘어선 사회 문화적 맥락으로 확장된다. 예술과 상업주의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조형작품을 통해 공개하였는데, <이런 미술-설거지, 1994>전에서는 ‘The visible pumping heart’라는 제목의 오브제를 만들고 오프닝 퍼포먼스로 경매를 진행했다. 갤러리에 모인 관객들에게 경매의 시작을 알리고 날개 달린 여성 토르소와 복잡하게 장식된 자웅양성의 인형을 유리장에 담아두었다.

그녀는 작품을 만드는데 소비한 시간을 계산해서 경매에 반영했는데 그것은 예술의 개념을 생활용품으로 전환하여 패러디한 것이다. 퍼포먼스 말미에는 작품뿐만 아니라 행사를 위해 입고 있었던 옷마저 실제 경매의 물품처럼 다루었다. 본 전시를 통해 이불은 자본의 힘이 예술을 지배하지는 않지만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퍼포먼스로 서술하였다.

(왼쪽부터)‘사이보그’연작, 1998년/‘몬스터 핑크’, 2011
‘사이보그’ 연작과 ‘몬스터’ 연작은 이불의 신체에 대한 관심이 생물학적 경계로까지 이행된 것을 가시화한다. 하위문화나 SF 영화 등에서 나올 법한 그로테스크한 존재는 이상화된 인간상(남성 이미지)이 아닌 그 외의 타자들을 상정한다. 이에 성과 출산의 코드로 점철된 여성 이미지는 관습화된 인식의 틀 안에서는 지극히 기괴해 보일 수밖에 없다.

이불은 항상성에 충실하기보다는 경계를 넘는 변형이 생명의 실체임을 강조하였고,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원시 생물 같은 형태를 사이보그로 진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로써 성의 구분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닌 선택의 행위로 그 의미를 축소하고 기계적인 미래의 인간상임을 암시하였다.

1997년부터 시작된 ‘사이보그’연작과 ‘몬스터’연작 등을 통해 해외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은 이불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일본 모리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했고, 1999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1997년 MOMA 전시 때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날생선을 전시했다가 심한 악취 때문에 작품을 철거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술관으로부터 바로 정중한 사과와 그에 따른 재설치 약속을 받게 된다.

- 국내외 미술품 경매 최고가 작품 이력

‘Sternbau No.25’, 2010
이불 작품은 설치작업이 많아 일반 컬렉터들이 소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지만 국내외 경매 이력을 살펴보면 출품작마다 꾸준한 수요가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최고가 경매 이력을 보유한 작품은 2011년 소더비(Sotheby‘s) 경매에 출품된 ‘Sternbau No.25’(2010)이며, 가격은 13만 5000달러(약 1억 6천만원)에 낙찰되었다. 국내 미술품 경매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다양한 매체(aluminum, mirror, steel, ceramic)를 활용한 조형, 설치작업들이 주류를 이루고, 해외에서는 스테인레스 강선(stainless steel wire)을 소재로 한 설치작업의 낙찰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 안녕과 평화의 의미를 반추하도록 제작한 설치 작품

‘Willing To Be Vulnerable - Metalized Balloon’, 2015 - 2016
이번 2019 홍콩 아트바젤에서 전 세계 미술애호가들의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은 단연 이불의 12m 대형 설치작품 ‘Willing To Be Vulnerable-Metalized Ballon(취약할 의향)’이다. 하늘에 매달린 은색의 대형 비행선 작품은 상업적 판매와 상관없이 작가를 집중 조명하는 권위있는 부문인 ‘엔카운터(Encounter)’ 섹션을 장식했다.

1937년 5월 힌덴부르크 비행선 폭발로 승객 35명이 사망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실패와 위험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욕망과 의지를 비행선 모양의 은빛 기구와 바다에 깔린 금속제 거울판으로 형상화했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 뿐 아니라 영국 런던, 독일 그로피우스 바우에서 열린 회고전에도 선보인 시리즈이다.

“비행선이 폭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후로도 인간은 발전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비행기가 나오게 했어요. 시도하고 실패하고 그래도 또 시도하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불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를 상징하는 유토피아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유토피아는 이상적이기에 다다를 수 없고, 다다를 수 없기에 실패하는 세계이지만 동시에 이상적이기에 희망적이고, 희망적이기에 반추해야 하는 세계이다.

‘오바드V’, 2019
올해로 제 58회를 맞이한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의 주제는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시대’는 흥미롭지만 결코 평화롭지 않은 세계적인 난제(難堤-난민, 재생, 환경문제)를 반영한다. 지난 1999년 제 48회 베니스 비엔날레 당시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한 후 20년 만에 본 전시 작가로 초대된 이불은 명실상부 세계적인 작가로 우뚝 섰다.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감시 초소(GP) 철수 과정에서 나온 철조망 등 해체 잔해물로 제작된 높이 4m, 철탑같은 작품의 제목은 ‘오바드V’(Aubade)이다. 이는 사랑을 나누고 이별하는 연인을 위한 새벽의 노래를 뜻한다.

이불은 분단의 이유를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조명하고, 이데올로기는 근대를 상징하기 때문에 작품은 단순히 분단에 이별을 고하는 노래가 아닌 이데올로기(근대)를 넘어서려는 움직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철재의 직선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로 구성된 형상물에 조명과 다양한 신호를 달아 온기를 전하는 방식은 과거의 흔적들을 바라보며 긍정의 미래를 기대하는 유토피아적 의미를 내포한다.

거대한 설치 작품들로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는 이불의 향후 작가로서의 목표는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작업을 하지 않는 삶을 버티기 힘들 것 같다고 설명하는 그녀에게 눈을 뜨면 작업실로 향하는 현재의 삶이 곧 꿈인 것이다. 이불의 명성과 작품에 견주어 너무도 소박한 그녀의 목표를 바라보며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단어가 연상되었다. 앞으로 이불의 미의식을 통해 옮길 산의 형상과 형세에 담긴 작가적 메시지가 궁금하다.

주송현 아트투게더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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