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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위핑(빙판을 빗자루로 닦는 것) 로봇이 더해지고, 빙질변화까지 반영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발전하는 연말께에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거머쥔 여성 컬링 국가대표팀 ‘팀킴’과 견줄 실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빙질의 변화’ 못 읽은 컬리…본 경기 패배
8일 오후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센터. 무게 86㎏, 카메라가 부착된 머리를 빼들면 높이가 220㎝까지 길어지는 컬리가 20㎏에 육박하는 스톤을 미끄러운 빙판을 달려 연신 하우스 중앙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특히 컬리가 던진 스톤이 앞을 막고 있던 상대팀(춘천기계공고 컬링팀)의 스톤 3개를 유유히 피해 하우스 중앙에 밀어 넣고, 더블 데이크아웃(상대팀 스톤 두 개를 동시에 쳐내는 샷)에 성공하자 관중들 사이에서는 절로 환호성과 박수가 나왔다.
컬리는 지난해 4월부터 고려대와 UNIST(울산과학기술원) 등 8개 대학과 산업체 연구진 60여명이 컨소시엄 형태로 뭉쳐 개발한 세계최초 AI 컬링로봇이다.
원리는 이렇다. 경기장에는 두 대의 컬리와 경기 상황을 파악하고 이에 따른 전략을 짜는 AI 프로그램인 컬브레인(CurlBrain)이 설치된 PC가 교신한다.
경기장 반대편에 선 스킵역할 컬리가 머리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스톤의 위치를 실시간 인식한 뒤 데이터를 컬브레인에게 보낸다. 컬브레인은 최적의 스톤투구 위치를 계산, 투구로봇에게 힘과 투구방향, 스톤 회전 등을 지시한다. 이후 투구로봇 역할을 맡은 컬리가 컬브레인의 지시에 따라 스톤을 던지게 된다.
프로그램만 작동하면 되는 바둑 AI ‘알파고’와 달리 컬리는 AI 프로그램 뿐 아니라 이를 수행하는 로봇 제어기술도 조화를 이뤄야 하는 셈이다.
사전시연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던 컬리가 본 경기에서 패한 이유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빙질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현장에 있던 컬링 전문가 및 연구진의 분석이다.
컬링경기에서는 빙판에 마찰력을 만들기 위해 미세한 얼음알갱이인 ‘페블(Pebble)’을 만든다. 페블에 따라 마찰력이 달라지기에 똑같은 세기로 투구를 한다고 해도 나아가는 거리와 방향이 달라진다. 스위핑을 하는 이유도 페블을 문질러 마찰력을 없애기 위해서다.
컬리는 경기 전 5개 정도의 스톤을 던져보고 이에 따라 페블의 정도, 즉 빙질을 파악하고 이를 경기 끝날 때까지 기준으로 삼는다. 이를 칼리브레이션(Calibration)이라고 한다. 선수들 역시 경기 전 약 10분 정도 빙질을 읽는 ‘아이스체킹’을 한다.
하지만 컬링장의 빙질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페블이 녹으면서 마찰력이 낮아지기도 하고, 스위핑을 통해 페블이 깎여 나가기도 한다. 온도변화가 심했거나 스위핑을 많이 한 경기라면 빙질의 변화가 더 크다.
결국 최초 빙질 상태만 기준으로 투구의 힘과 방향을 정하는 컬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재문 춘천기계공고팀 감독은 “선수들은 달라지는 빙질의 상태에 대처해 경기를 할 수 있었지만 컬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경기가 진행될수록 선수들이 유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선수들이 컬리에게 가장 혀를 내두른 부분은 원하는 곳에 스톤을 안착시키는 ‘드로우(Draw)’ 능력이었다. 연구진에 따르면 컬리가 하우스 안쪽 빨간색 원안에 스톤을 안착시킬 수 있는 확률은 65%, 테이크아웃 성공률은 80%에 달한다. 이는 국가대표 선수들과 견줘도 크게 뒤지지 않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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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9개월 만에 스킵과 투구 역할을 하는 컬리를 개발한 연구진은 현재 스위핑 로봇을 개발 중이다.
스위핑을 하게 되면 페블을 적극적으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스톤을 원하는 위치에 보내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스위핑에 따라 스톤의 거리가 3~5m까지 달라지며 방향도 크게 달라진다. 빙질의 변화에 대처하기도 용이해진다.
하지만 스위핑 로봇은 고려해야 할 점이 매우 많다. 먼저 이동하는 스톤의 속도를 파악하면서 따라가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스톤을 건드리지 않고 피해가야 한다. 또 미끄러운 빙판 위를 속도감 있게 달려하기에 부피가 너무 크거나 무거워도 곤란하고, 빙질을 파악해 스위핑을 할 때와 아닐 때도 구분해야 한다.
연구진인 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는 “스위핑 로봇은 투구 및 스킵로봇보다 훨씬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아 난이도가 어렵다”며 “2년차에 스위핑 로봇 개발에 착수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올해 말까지 스위핑 로봇을 개발을 마치는 한편 컬브레인이 빙질에 따른 변화도 대응하고 더 수준 높은 전략을 구사하도록 발전시킬 계획이다.
특히 스위핑 로봇을 통해 투구실수를 적극 수정할 수 있게 된다면 국가대표와 비슷한 수준을 갖출 것으로 기대했다. 이 교수는 “올해 연말에 스위핑 로봇이 나오면 수준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며 “그때는 ‘팀킴’과 평가전을 해볼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