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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소설을 쓰는 동안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에 대한 끝없는 질문의 답을 완성하려 했다. 그것은 종종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지만 최대한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려 했다. 깊이 잠들어 있는 한국에 감사한다.”
한국문학이 마침내 소설가 한강(46)의 이름을 타고 세계문학의 바다에 제대로 돛을 올렸다. 한강은 지난해 1월 영국에서 ‘더 베지테어리언’(The Vegetarian)으로 출판한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했다. 한강은 터키의 노벨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 중국의 거장 옌롄커 등 쟁쟁한 비영연방 작가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작가가 ‘세계 3대 문학상’을 수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버지·동생·남편까지… 문학집안 배경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은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문학잡지 ‘문학과사회’에 시 ‘서울의 겨울’을 발표하고 이듬해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으로 등단한 후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여수의 사랑’(1995)과 ‘검은 사슴’(1998)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과 외로움을 보여주는 작가”란 평가를 받았다.
한강은 이상문학상 이후에도 2010년 ‘바람이 분다, 가라’로 제13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고 2014년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로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뿐만 아니라 동화에도 관심이 많아 ‘내 이름은 태양꽃’ ‘붉은 꽃이야기’ ‘눈물상자’ 등을 꾸준히 발간했다. 서울예술대 미디어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한강은 2014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4개월을 보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시집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한 산문형식의 신작 ‘흰’(난다)의 이달 말 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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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억압 등 보편적 문학주제 몰입
한강은 시적인 문체와 비극성이 두드러진 작품세계로 또래 작가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특히 폭력과 억압이란 보편적인 문학적 주제를 서정적이고 섬세한 문장을 무기 삼아 끝까지 파고드는 기질을 보였다.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한강의 작품은 보편적인 주제에 집요하게 몰입한다”며 “작품 속 인물의 특별한 성격을 극단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두드러진다”고 평했다.
△ “앞으로 이런 일, 더 이상 낯설지 않을 것”
이날 수상 직후 한강은 인터뷰를 통해 “좋은 번역자와 편집자를 만난 것이 굉장한 행운인데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묵묵히 자신의 글을 쓰고 있는 동료와 선후배 작가들을 지켜봐주면 정말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자신의 소설에 대해선 “상업성이나 대중성이 없지만 인간에 대한 질문을 붙잡고 씨름하는 소설”이라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독자들이 소설읽기를 좀 다르게 생각해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이어 “책을 쓰는 건 질문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강조한 뒤 “가능한 한 질문 안에 머물고자 노력했고 여전히 나아가고 있다. 이제는 아름다움과 빛처럼 어떻게 해도 파괴할 수 없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향후 작품세계의 방향을 암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