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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지난 28일 늦은 오후(현지시간) 영국 런던 베이스워터 지역에 위치한 대형마트 웨이트로즈. 이곳의 과일·야채 코너는 4분의3 이상이 비어 있다시피 했다. 1㎏당 2.5파운드(약 3680원)인 대파와 4개에 2파운드인 복숭아는 금세 동이 났다. 포도, 당근, 브로콜리, 비트, 딸기 등도 마찬가지였다.
웨이트로즈의 한 직원은 “아침에 채워놓는 과일과 야채는 요즘 더 빨리 팔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영향에 대한 물음에는 “(올해 10월 말부터) 브렉시트가 되면 식료품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토로했다. 현지에서는 불안 심리가 커지면서 신선식품 소비를 늘리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영국은 식재료가 싸고 신선한 나라다. 네덜란드,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매일 통관 절차 없이 무관세로 수입되는 덕이다. 와인과 맥주가 저렴한 것도 이 때문이다. 런던에 사는 한인들은 “식료품은 한국보다 저렴하다”면서도 “브렉시트 이후에는 더 비싸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2일 런던 경제계와 금융가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서민 물가의 급등 가능성이다. 영국 정부에 따르면 영국 내에서 소비하는 식료품의 28%(지난해 기준)는 EU에서 생산된 것이다.
런던에 파견된 한 국내 고위당국자는 “런던은 외식 물가가 비싸 거의 집에서 조리를 해 먹는다”며 “과거 여느 경제 충격처럼 브렉시트의 타격도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가장 클 것”이라고 했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총재는 “장바구니 물가가 10% 상승할 수 있다”고 했다. 브렉시트의 혼돈 속에서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하면 식료품 가격은 추가로 상승할 수 있다. 게다가 통관 절차가 지연되면 식료품의 신선도가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웨이트로즈, 세인즈버리, 테스코 등 마트에서 최근 사재기 조짐마저 있는 이유다.
문제는 브렉시트가 유럽만의 악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은 미국, 중국, 일본, 독일과 함께 국내총생산(GDP) 기준 5대 경제 대국이다. 노딜 브렉시트 현실화→세계 경제 불확실성 확대→세계 교역량 감소→한국 수출량 감소 등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이후 한국의 월별 수출 증가율은 마이너스(-)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