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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산타 랠리’는 없었다. 트럼프 리스크가 한꺼번에 금융시장을 덮치면서,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뉴욕 증시의 3대 지수가 일제히 2% 이상 하락한 게 대표적이다. 국제유가는 무려 6% 넘게 폭락했다.
올해는 ‘산타 랠리’ 실종됐다
25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653.17포인트(2.91%) 하락한 2만1792.20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도 각각 65.52포인트(2.71%)와 140.08포인트(2.21%) 내렸다.
통상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투자 심리가 살아나곤 했다. 기업들의 보너스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나오고, 연말 선물을 위한 소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기업 매출 등에 호재다. 산타 랠리라는 말이 생긴 것도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줄곧 주가가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뿐 아니라 대다수 나라에 적용됐던 현상이다.
그런데 올해는 예외다. 미국 증시 3대 지수가 성탄 전야 일제히 2% 이상 고꾸라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유럽 증시도 미끄러졌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100지수는 6685.99(-0.52%)로 장을 마감했다.
그 대신 초안전자산으로 불리는 미국 국채가격은 확 뛰었다. 같은날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거래일 대비 4.12bp(1bp=0.01%포인트) 하락한(국채가격 상승) 2.7413%에 마감했다. 지난 4월2일 2.7382%를 기록한 이후 거의 9개월 만의 최저치다.
한꺼번에 닥친 ‘트럼프 리스크’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다 싶은 곳으로 자금이 움직이는 ‘머니 무브(money move)’. 최근 금융시장의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건 도대체 왜일까. 키워드는 하나로 수렴된다. ‘트럼프’다. 예상치 못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금융시장 전체가 출렁이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셧다운 리스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둘러싼 여야간 대립에 미국 연방정부는 일시적으로 문을 닫은 상태다. 시장이 주목하는 건 셧다운 장기화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셧다운은 앞서 두 차례나 있었지만, 모두 3일(1월20~22일)과 1일(2월9일)로 길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태가 길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시장의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 사태가 현실화한 이후에도 “(멕시코 국경장벽은) 절실히 필요하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남경옥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상원에서 예산안을 채택하려면 3분의2인 60표 이상의 찬성표가 필요하지만 현재 공화당 의석은 51석”이라며 “셧다운이 장기화할 경우 시장 불안은 더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을 비롯한 측근들이 연이어 진화에 나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성탄 전야에도 “미국 경제의 유일한 문제는 연준”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국내 정책당국 인사들은 “오직 트럼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행보”라고 했다. 트럼프식(式) 좌충우돌 움직임은 그 자체로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세 번째는 경기 둔화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초 재정을 워낙 많이 쓴 탓에 내년 이후 재정의 경기 대응 여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기선행지수(CLI) 통계를 보면, 미국의 10월 CLI는 기준값 100을 밑도는 99.72로 올해 3월(100.17)을 정점으로 7개월째 하락세다. OECD CLI는 6~9개월 후 경기를 예측하는 지표다.
소재용 하나금융투자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시장의 시선은 한동안 경제지표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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