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KB사태와 금감원의 '엄정대응'

  • 등록 2013-11-27 오전 8:29:12

    수정 2013-11-27 오전 8:43:59

[이데일리 나원식 기자] 금감원이 최근 부쩍 바빠진 모습이다. 사건이 한 번 터졌다 하면 발빠르게 대응해 또 다시 동양 사태와 같은 일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수현 금감원장도 동양 사태와 관련, 이달 초 이례적으로 임직원 대상 ‘특별 조회’를 실시해 “금융 법질서에 도전하는 행위에 대해선 관용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해야 할 것”이라며 금융사들에 엄포를 놨다.

최근 잇단 비리가 발각되며 문제가 되고 있는 국민은행에 대해 즉각 특별검사에 돌입, 이례적으로 10명의 검사역을 투입한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방증한다. 산적한 검사로 일손이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검사국의 인력까지 빌려 즉각적인 조치를 했다. 금감원의 이같은 대응은 동양사태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에 일부 금융사 직원들 사이에서는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동양 사태로 뭇매를 맞은 금융당국이 잘하고 있는 금융사를 괜히 옥죄고 있다는 논리다. 한 금융사 직원은 기자에게 “금융감독원이 동양그룹 사태 이후 여론이 안 좋으니까 너무 과하게 금융사들을 대하는 것 같다”는 불평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의 모습을 보면 금감원이 ‘과하게’ 일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이제서야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국민은행 직원들의 90억원 횡령 사건 등 일련의 비리 사건은 물론 국내 최대 보험사 ‘보험왕’의 횡령 등 돈을 사적으로 빼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드러나고 동양그룹 사태 등 고객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구태’가 아직도 금융권에 만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금감원이 ‘엄포’를 놓고 시간이 지나 흐지부지되는 경우다. 지난 3월 전산 대란이 발생한 농협에 대해 엄중 처벌하겠다고 해놓고, 검사 결과 ‘경징계’로 가닥을 잡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이번 국민은행 사건 역시 여론이 가라앉은 뒤에는 사건 당사자 처벌에만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 원장은 얼마전 국민은행 사건처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진과 감사에 대해 엄벌하겠다고 공언했다. 금감원이 다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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