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냄새에 민감한 '큰 손'들 사이에선 유가나 금 관련 상품에 돈을 묻어두고 크게 벌려는 '배짱 투자'가 유행이다. 또 단기상품에 돈을 넣어두고 기회를 살피는 '눈치 투자'가 등장하고 있다. 이런 투자는 경기변동에 따라 적잖은 손실을 볼 수 있는 위험도 있다.
◆급락한 유가, 반등에 베팅
서울 강남에 사는 자산가 정모(43)씨는 지난달 삼성투신이 운용하는 'WTI원유 펀드'에 1억원을 투자했다. 이 펀드는 작년 최고치에 비해 가격이 3분의 1토막인 1배럴당 40달러대까지 하락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선물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정씨는 현재 유가가 정상적인 가격이 아니며 경기가 회복되면 원자재 중에서 가장 먼저 상승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투자를 결심했다.
지난달 말 새로 출시된 이 펀드에는 이달 16일까지 38억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다. 정씨와 같은 고소득 자산가들 190여명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정 이후 수익률도 9.02%(16일 기준)로, 국내 주식형 펀드(5.54%·제로인)보다 높다.
◆인플레 공포로 황금에 입질
전세계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시장에 쏟아 붓고 있어서 나중에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돈, 특히 달러의 가치가 하락한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이러한 화폐가치 하락에 대비한 투자 대안으로 금에 주목하고 있다.
기업은행의 골드뱅킹 상품은 지난 10일 설정액이 69억원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익률도 고공행진 중이다. 신한은행의 경우 16일 기준 골드리슈 계좌 수익률은 지난 3개월간 30.31%에 달했고, 6개월간은 49%를 웃돌았다.
장선호 신한은행 상품개발부 차장은 "국제 금가격이 온스당(31.1g) 900달러대로 지난달보다는 떨어졌지만 자산가들은 요즘처럼 금값이 주춤할 때가 오히려 투자 기회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변동성이 큰 상품이기 때문에 자금을 나눠서 분할 매수하는 게 좋다고 장 차장은 덧붙였다.
◆초저금리 속 고금리 회사채 사냥
노평식 동양종합금융증권 부장은 "고금리 채권은 좌판에 진열하면 바로 순식간에 팔려 나간다"며 "금융시장 불안으로 마땅히 돈 굴릴 곳이 없는 큰손 고객들의 자금이 많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동양종금증권은 올들어 전년 동기 보다 300%나 많은 1조4000억원어치의 채권을 팔아 치웠다. 굿모닝신한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대부분 증권사들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채권 판매액이 200~300%씩 늘어났다.
◆MMF 우산 밑에서 임시 대피
올초까지 있던 고금리 특판예금이 자취를 감추면서 갈 곳 잃은 뭉칫돈은 수시입출금식 단기금융상품인 MMF(머니마켓펀드)로 몰려가고 있다. 김해식 우리은행 PB팀장은 "주식·펀드 등에 투자해 손실을 이미 많이 봤기 때문인지 현시점에서 위험자산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서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위험회피' 수요를 빨아들이면서 MMF는 지난 13일 설정액이 125조원을 넘어섰다. 한덕수 삼성증권 마스터PB도 "IMF 외환위기 당시엔 외국인들이 먼저 싼 자산 매수에 나서고, 한국 부자들이 재빨리 뒤따라가는 형국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그런 모멘텀(계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 움츠리고 있는 부자들이 아직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금성 자산을 갖고 대기하려는 수요가 많아 시장 전체가 회복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