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오상용기자] 19일 중국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사임한 장쩌민(江澤民.78)은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에 이어 중국을 이끌어왔던 지도자. 지난 89년 이후 15년 동안 중국의 권력서열 1인자였다.
장쩌민은 장쑤성 양저우(揚州) 출생으로 상하이교통대학 전기학과를 졸업했다. 재학시절 상하이 학생운동권의 핵심인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20세 되던 해인 46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장쩌민은 55년 옛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 1년 동안 자동차학을 공부했으며 자동차 공장 엔지니어에 이어 공장장,연구소부소장을 거치며 기술전문 경제관료로 성장했다.
장쩌민도 문화대혁명의 칼날을 비켜가진 못했다.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장쩌민은 당과 공직에서 추방되어 10년 동안 야인생활을 했으나 이후 76년 국무원 제1기계공업부의 책임자로 복권된다.
장쩌민이 권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하게 된 계기는 85년 상하이시 시장으로 선출되면서부터. 장쩌민은 기술관료의 실리를 살려 상하이시를 중국 최고의 경제ㆍ금융 중심지로 키웠다.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상하이 당총서기로 승진했고 이후 87년엔 공산당 정치국원에 당선됐다. 장쩌민은 상하이시장 재직시 춘제(春節) 때마다 상하이에 들르던 당시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과 만나는 기회를 자주 가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쩌민은 89년 6월 공산당 제13차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13기 4중전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당선됐으며 천안문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당시 당총서기의 뒤를 이어 당 총서기까지 맡았다.
장쩌민은 같은 해 11월 덩샤오핑이 맡고 있던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물려받았으며 이후 90년 4월에는 국가군사위원회 주석을, 93년 3월 국가주석까지 맡으며 당(黨)ㆍ정(政)ㆍ군(軍)의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장쩌민은 2002년 11월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 부주석에게 당 총서기 자리를 물려준 것을 시작으로 다음해 3월 국가주석직을 이양한 데 이어 이번에 중앙군사위 주석직까지 넘겨주게 됐다.
한편 장쩌민의 퇴진으로 중국 정치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됐다. 장 주석을 포함한 3세대는 항일독립운동에 가담했던 마지막 세대다. 하지만 후진타오 등 4세대는 공산화된 중국에서 교육을 받은 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