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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사진 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농민지원 방안을 발표한 자리에서 “무역전쟁을 끝내기 위해 합의할 좋은 가능성이 있다”며 이처럼 밝혔다. 이른바 ‘화웨이 봉쇄책’이 미·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일종의 ‘압박 카드’로 활용했다는 걸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지난해 비슷한 제제 및 해제 등을 거친 ZTE(중흥통신) 사태와 미묘하게 닮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일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중국과 딜이 성사되면 훌륭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다. 타결에 대한 ‘낙관론’을 설파하는 동시에, ‘괜찮다’는 표현으로 미국이 중국보다 ‘상대적 우위’에 있음을 드러내 압박의 강도를 높인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이 나온 이날 미국 주식시장은 ‘1%대’의 하락장 연출했다는 점에서, 향후 무역갈등 ‘장기화’에 따른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증시 급락…월가의 ‘경악’
지난 10일 워싱턴D.C에서의 협상을 마지막으로 미·중 양국은 추가 협상 날짜조차 잡지 못한 채 ‘관세 전면전’을 벌이며 ‘강(强) 대(對) 강(强)’ 대치를 이어왔다.
이날 월가(街)에서 양 정상의 회동이 불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 배경이다. 실제로 사우스차이나모닝 포스트(SCMP)는 중국 현지 석학들 사이에서 미·중 정상회담 계획이 불발될 수 있다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최대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양 정상이 만나더라도) 공식 합의를 이룰 가능성이 작아졌고 미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할 위험은 커졌다”고 내다봤다.
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나스닥 지수 등 3대 지수는 모두 1%대 곤두박질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식시장의 등락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이날 화웨이 봉쇄책을 지렛대로 무역협상의 길을 다시 열어놓은 것도 이 때문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른바 ‘새로운 대장정’을 언급하며 장기전 불사 의지를 내비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G20 정상회의에서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며 정상회담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작금의 무역갈등 구조를 더 끌고 갔다가 자칫 미국 경제가 실제 휘청일 수 있다는 우려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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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화웨이에 대해 “안보적 관점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만약 중국이 ‘양보’하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갈 경우 대(對) 화웨이 압박을 한층 더 강하게 펴겠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화웨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깊이 연계돼 있다”고 지적한 뒤, ‘화웨이와 거래를 끊는 기업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우리는 모든 이들이 이런 위험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국무부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사실상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 기업들에 ‘화웨이 봉쇄책’에 동참하라는 압박인 셈이다.
일각에선 화웨이가 지난해 4월 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7년간 미국 기업과의 거래 금지 제재를 받은 ZTE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흥미로운 분석도 제기된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ZTE를 벼랑까지 몰아붙이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무역협상에 나서자, 6월 벌금과 일종의 보증금을 내는 조건으로 제재를 풀어준 바 있다. 인텔·퀄컴 등에서 스마트폰 제조부품 상당 부분을 공급받던 ZTE는 사실상 존폐 위기에 몰렸다 ‘구사일생’한 셈이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중국의 두 통신업체가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