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7일, 삼성전자(005930)는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 증설에 대한 답변을 공시했다. 앞서 5월 29일과 6월 28일에 이은 세 번째 조회공시 답변이었지만 내용은 앞선 두 번과 토씨 하나까지 똑같았다. 업계에선 공시 다음날인 28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간담회 자리에서 중국 투자와 관련한 어려움을 언급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권 부회장의 발언은 국내 반도체 산업 인력 수급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청하는데 머물렀다. 재계에선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기간이 6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총수 부재’로 인한 투자 결정 지연과 실적 악화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 6개월…도드라지는 빈자리
3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27일 삼성전자가 올해 2분기 실적발표에서 영업이익이 14조원을 넘는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지만, 증권사들은 3분기 컨센서스(전망치)를 줄줄이 하향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다자간 전화 회의)을 통해 ‘갤럭시노트8’ 출시에 따른 마케팅비 증가와 메모리 반도체 물량 확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의 매출 지연 등을 언급하면서 하반기 실적 기대감이 꺾이고 있는 것이다. 키움증권과 미래에셋대우가 3분기 영업이익을 각각 13조 8000억원과 13조 7500억원으로 하향했고, 동부증권도 애초 15조원에서 13조 8000억원으로 대폭 낮췄다. 삼성전자의 주가도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종가 기준 7월 20일 256만원에서 실적 발표 직후인 28일엔 238만 8000원까지 떨어져, 불과 일주일 새 7%나 급락했다.
재계에선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기간이 반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총수 부재에 따른 부작용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권오현 부회장이 삼성을 대표해서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간담회에서 이런 상황이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구본준 LG(003550)그룹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004170)그룹 부회장 등은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따른 배터리 및 유통사업의 어려움을 피력했다. 그러나 권오현 부회장은 “반도체 산업은 인력 수급 문제에 크게 봉착해 있다”는 국내 인력 수급 문제를 거론한 것 외에는 해외 사업이나 투자 관련 발언을 일절 하지 않았다.
8월 중순 1심 판결 이후 총수 부재 장기화 우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은 오는 8월 중순께 나올 전망이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사장 등 3명에 대한 피고인 신문은 8월 1일, 결심 공판은 같은 달 7일 진행할 예정이다. TV로 생중계될 가능성이 높은 이 부회장에 대한 1심 판결 날짜는 7일 결심 공판에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이 2013년 7월 구속된 이후 지난해 8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 올해 5월 경영에 본격 복귀하기 전까지 약 4년간 사장단 인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또 투자 규모도 이 회장 구속 전인 2012년 2조 9000억원에서 2015년 1조 7000억원으로 40% 이상 감소했다. CJ는 이 회장이 얼마 전 경영 전면에 다시 나서면서 2020년까지 36조원을 투자해 ‘월드 베스트(World best) CJ’를 달성하겠다는 중·장기 비전을 내놓을 수 있었다.
SK그룹도 최태원 회장이 수감 중이던 2013년 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두 번의 사장단 인사를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결정했다. 하지만 총수가 없다보니 한해 실적을 기준으로 인사가 이뤄진 부분이 한계로 지적된다. 또 일본 도시바 메모리사업부 인수 등 그룹 차원의 대규모 투자 결정도 최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이후에 이뤄질 수 있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IT 산업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M&A를 통한 첨단기술 확보와 전략적 투자를 통해 신성장 동력 발굴이 필수적”이라며 “현재 대·내외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올 하반기 이후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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