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이쯤 되면 헷갈린다. 그들이 연극인지 연극이 그들인지. 그들의 연극은 삶과의 경계선이 따로 없다. 올해로 마흔 살을 맞은 ‘극단 76단’과 서른이 된 ‘극단 연희단거리패’ 얘기다. 둘이 합쳐서 70년, 한국을 대표하는 두 극단이 나란히 생일을 맞았다. ‘거장’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굵직한 족적을 남겨온 극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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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생일을 자축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연희단거리패는 담론이 사라진 연극계를 반성한다며 초심으로 돌아가 ‘깽판’으로 맞서겠다고 했고 76단은 2012년 신작 ‘햄릿 6-삼양동 국회 옆에서’를 끝으로 겪어온 정체를 벗고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연희단거리패는 연극 ‘벚꽃동산’(15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을 공연 중이다. 지난 2월 ‘방바닥을 긁는 남자’에 이은 창단 30주년 기념작이다. 76단은 신작 ‘리어의 역(役·逆)’(8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6월 1∼5일 게릴라극장)을 준비했다. 기 감독이 4년간의 외도를 접고 대본을 쓰고 연출한 창작극이다.
극단 76단 ‘관객모독’ 뒤잇겠다
“일단 코미디를 쓰고 싶다. 엄청 웃긴 걸 쓰고 싶은 데 잘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목표는 엄청 웃기는 것이다. 하하.” 기 감독의 올해 계획은 ‘웃기기’다. 기국서 감독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2~3년 정도 삶의 즐거움을 모르고 정신이 계속 맴도는 정체기를 겪었다. 타개책은 없고 어두운 시기였다”며 “이번 신작이 광적이고 관념적인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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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감독은 “40년간 극단을 이끌면서 힘든 적도 많았지만 비단 경제적인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실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된다고 느낄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또 언제나 쫓기듯 작업해야 하는 여건이 굉장히 고생스러웠다”고 회상했다.
4년 만의 신작 ‘리어의 역’에는 기 감독의 연극적 소회가 담겼다. “연극을 한 40년 하다 보니 나이든 배우의 마음이 궁금해졌고, 나이를 먹다 보니 치매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치매에 걸린 노배우가 겪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그려보자고 했다. 평생 연기만 해온 배우는 참으로 존경스럽다. 그런 모습을 담고도 싶었다.” 이어 “내 20대의 기치는 ‘새로운 것’이었다. 기존의 것에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공원이나 지하철에서 힘없이 앉아 있는 노인을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고도 덧붙였다.
연희단거리패 ‘게릴라 이윤택의 꿈’
러시아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 ‘벚꽃동산’은 이윤택 감독이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청년 이윤택은 10대에 ‘벚꽃동산’을 읽고 연극인의 꿈을 키웠다. ‘언젠가 무대에 올리고 싶다’던 그 소망은 이제야 이뤄졌다. 예순을 넘긴 이 감독이 이번에 처음으로 무대구성과 연출을 맡았다. 이 감독은 “지금 나와 마음 편하게 연극 할 수 있는 배우와 스태프로 이 정도를 표현해내는 것, 이게 내가 꿈꿨던 연극세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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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깽판’을 표방한 연희단거리패의 축제는 계속된다. 이 감독은 “창단 30주년을 맞아 우리 연극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 고민했다”며 “깽판을 치겠다는 건 고사 직전의 연극판을 다양한 시도로 흔들어 깨우겠다는 의미다. 정치적 틀에 갇힌 배우 유인촌과 명계남을 무대에 세우고도 싶다”고 설명했다. 8월 김소희 대표가 연출한 우리극연구소의 ‘오이디푸스’, 9월 중순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한 ‘햄릿’, 12월에 이 감독이 연출하는 베케트의 ‘앤드 게임’ 등이 그것이다. 기대작은 작가 윤대성(77)이 7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첫사랑이 돌아온다’(7월), 또 이 감독이 쓰고 연출한 신작 ‘꽃을 바치는 시간’(11월). 김소희·김미숙 등 관록의 배우들이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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