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라진 어머니를 가족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약 열흘 뒤 시신을 발견했지만, 가족들은 그로부터 3년1개월이 지난 뒤에야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해 매장했다는 통보였다.
이 전화를 받기까지 가족들은 실종 전단<사진> 4만장을 전국에 뿌렸다. 비가 내리면 처마 밑을 둘러보고, 눈이 오면 지하도를 뒤졌다. 어머니를 찾는 동안 아들의 사업은 부도났다. 온갖 악몽을 지우며 가족들이 알 수 없는 곳을 헤맬 때, 경찰은 가족의 집에서 불과 직경 5㎞ 이내 지점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하고, 매장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조명훈(당시 32세)씨의 어머니(조정이·당시 67세)가 실종된 것은 2003년 4월23일. 오후 4시쯤 외출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 심한 건망증 수준의 치매 증세가 있었지만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20년이 넘도록 파출부, 청소부, 계란 장사까지 하며 우리 6남매를 모두 키워준 어머니였습니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밤 1시가 되어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이제야 아들들이 장성해 편히 모실 수 있게 됐는데….”
애가 탄 조씨의 가족은 전국의 치매요양소를 뒤지기 시작했다. 고양, 서울, 성남…. 수도권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머니의 고향인 전남 순천까지 내려가 봤다. 모두 허사였다. 번창하던 조씨의 동생 회사는 조씨가 어머니를 찾아 자리를 비운 지 70여일 만에 부도가 났다. 실낱 같은 희망을 잡고 조씨는 지난해 8월 고양경찰서를 찾아가 DNA검사까지 의뢰했다.
▲ 실종 신고 10일 만에 경찰은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했지만, 가족들은 3년1개월이 지나 통보를 받았다. 20일 경기도 고양시 도내동에 ‘무명녀’란 이름으로 묻혀있는 어머니의 묘에서 둘째 아들 조강훈(41)씨는 잡초를 뽑고 또 뽑았다. | |
실종 3년 1개월 열흘째인 지난 2일, 조씨네 가족은 고양경찰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숨진 채 발견됐으며, 경찰이 매장했으니 조사받으러 오라는 것이다. 경찰에 기록된 시신 발견 일자는 실종신고 열흘 만인 2003년 5월 3일. 발견지는 집에서 5㎞ 정도 떨어진 한 야산으로, 사인(死因)은 저체온증이었다. 사진으로 남겨진 시신의 옷차림은 실종 신고 당시 경찰에 알려주고 전단에 표시한 모습 그대로다. 시신 발견 신고를 받고 처음 출동한 곳은 실종신고를 냈던 파출소에서 약 4㎞ 떨어진 주교파출소(현 주교치안센터). 실종 다음날부터 수도 없이 포스터를 붙였던 곳이었다. “지문검사가 3년이나 걸렸단 말이냐”는 가족의 항의에 경찰은 “여기선 잘 모르겠으니 본청(本廳)에 물어보라”는 대답뿐이었다.
어머니의 무덤은 집에서 3㎞ 떨어진 곳이었다. 시신은 하나의 봉분(封墳)에 또 다른 무연고자 시신 한 구와 함께 묻혀 있었다. 구청에서 세운 비석엔 이렇게 적혀있다. ‘무명녀(無名女). 발견일시 2003년 5월 3일. 매장일시 2003년 9월5일.’ 비석 앞에서 아버지는 굵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여기도 몇 번이나 왔었는데…. 그 ‘무명녀’가 당신일 줄이야….” 조씨의 가족들은 목이 메었다. “3년 전엔 흐릿하던 지문이 매장이 끝난 뒤에 갑자기 선명해졌다는 말입니까.”
숨진 조씨의 장례는 지난 7일 가족만 참석한 채 치러졌다. 집을 나선 지 1126일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