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파괴가 사명'…이스라엘 등뒤 노리는 헤즈볼라 수장

[글로벌스트롱맨]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사무총장
이스라엘과 40년 악연…이스라엘군에 아들 잃어
"아랍 세계에선 이스라엘에 고통줄 수 있는 지도자 평가"
이스라엘과 본격 대결시 레바논 황폐화 우려
  • 등록 2023-12-30 오전 11:00:00

    수정 2024-01-04 오후 2:24:26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우리는 아랍과 이슬람 국가 국민들, 그리고 전 세계 자유인들이 팔레스타인 국민과 저항운동에 대한 지지·후원을 선언하고 피와 말과 행동으로서 단결된 모습을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 지난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직후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낸 성명이다. 반미·반이스라엘을 고리로 하마스와 우호 관계를 맺어온 헤즈볼라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 북부와 인접한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을 공격하며 하마스를 돕고 있다.

레바논 수도 외곽에서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사무총장 연설을 보고 있는 헤즈볼라 지지자들.(사진=AFP)


헤즈볼라의 공격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 27일엔 50발이 넘는 미사일을 이스라엘에 날렸다. 이스라엘은 포격과 공습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헤즈볼라 기세를 꺾기엔 역부족이다. 이스라엘 전시 내각에 참여 중인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는 이날 “세계와 레바논 정부가 (이스라엘) 북부 지역을 향한 공격을 막고 헤즈볼라를 국경에서 몰아내는 데 나서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이 그렇게 할 것”이라며 헤즈볼라를 막으라고 레바논을 압박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스라엘이 이·팔 전쟁 발발 직후에도 헤즈볼라를 선제공격하려다가 미국 만류로 뜻을 접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얼마나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994년 연설하는 나스랄라.(사진=AFP)


“나스랄라는 전쟁의 산물”

“나스랄라는 거친 전쟁 세계의 산물이다” 레바논 일간지 로리앙르주르는 나스랄라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스랄라는 1960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근교에서 태어났다. 나스랄라가 태어날 당시 베이루트는 ‘동방의 파리’로 불릴 정도로 번성했지만 나스랄라와 같은 시아파는 레바논 사회에서 소외돼 있었다. 당시 레바논의 부와 권력은 마론파 기독교와 수니파가 과점하고 있었다.

1975년 기독교도와 무슬림 세력 충돌로 레바논 내전이 발발하면서 나스랄라 일가는 레바논 남부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나스랄라는 시아파 신앙에 심취했다. 매일 모스크를 찾던 나스랄라는 그곳에서 시아파 지도자 무사 알 사드르와 압바스 알 무사위을 만난다. 1975년 사드르가 시아파 민병조직 아말을 만들게 되자 나스랄라도 여기에 합류, 군사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아말의 군사 훈련을 도왔다.

1982년 레바논 남부에서 활동하던 PLO를 섬멸한다는 명분으로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침공했다. 엘리아스 사르키스 당시 레바논 대통령은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위해 구국위원회를 꾸렸는데 아말 지도자 나비 베리도 위원회에 합류했다.

여기에 반발한 강경파가 아말에서 떨어져서 만든 조직이 아랍어로 ‘신의 당’이란 뜻을 가진 헤즈볼라다. 무사위가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고 나스랄라는 그 밑에서 조직 살림을 맡았다. 1985년 조직을 공개하면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파괴’가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천명했다. 이 같은 사명대로 헤즈볼라는 게릴라전을 벌이며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시아파 종주국이자 중동 내 반미·반이스라엘 진영의 좌장격인 이란이 헤즈볼라를 물밑에서 지원했다. 나스랄라는 레바논 신문 니다알와탄과 한 인터뷰에서 “1982년 이후 우리의 젊음·삶, 우리 시대는 헤즈볼라에 합쳐졌다”고 말했다. 1987년 전쟁 상황이 소강되자 나스랄라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으로 유학 갔다. 이때 나스랄라는 자신도 레바논을 이란처럼 시아파 신정(神政) 국가로 만들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

1992년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던 무사위가 이스라엘군 헬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폭사했다. 나스랄라가 그 뒤를 이어 32살 나이에 헤즈볼라를 이끌게 됐다. 나스랄라는 무사위가 죽은 지 한 달 만에 아르헨티나 주재 이스라엘대사관에서 폭탄 테러를 감행해 이스라엘에 복수했다. 당시 테러로 29명이 사망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지겨운 싸움이 본격화했다. 이스라엘은 나스랄라를 제거하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대신 나스랄라는 1997년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당시 18살이던 아들 하디를 잃었다. 나스랄라는 아들의 죽음에도 “다른 많은 레바논 사람들처럼 순교자의 아버지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997년 나스랄라가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아들 하디의 시신을 만지고 있다.(사진=AFP)


2000년 이스라엘 철군 이후 ‘영웅’ 부상

2000년 국내외 압력에 이스라엘군은 18년 만에 레바논 땅에서 철수했다. 그간 저항을 주도해 온 나스랄라와 헤즈볼라는 영웅이 됐다. 나스랄라의 팬들은 그의 연설을 벨소리로 사용할 정도다. 이후 헤즈볼라는 장관직을 맡는 등 레바논 제도권 정치에서도 주류로 부상했다. ‘국가 안의 국가’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시리아 정치평론가 사미 무바예드는 국제정치평론 기고에서 나스랄라와 헤즈볼라의 인기 요인을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학교·병원·모스크 등에 대한 적극적인 기부 활동이다. 전 세계 시아파 공동체에서 걷은 기부금은 나스랄라 서명이 담긴 봉투에 담겨 전달된다. 또 다른 인기 요인은 능숙한 미디어 활용이다.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알마나르 방송은 헤즈볼라의 승리한 모습만을 보도하고 패배는 외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또 한번 전면으로 맞붙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군인 2명을 납치하자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국경을 넘어 맹공격을 퍼부었다. 당시 공격으로 레바논인 1125명과 이스라엘인 164명이 숨졌다. 전쟁은 34일 만에 이스라엘이 군대를 물리면서 끝났다. 미국 저널리스트 가이 라즈는 “아랍 세계에서 나스랄라는 이스라엘에 고통을 줄 수 있는 영웅적 지도자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예멘의 후티 등 다른 시아파 무장단체가 나스랄라와 헤즈볼라를 롤모델로 여기는 이유다. 하지만 헤즈볼라가 촉발한 당시 전쟁으로 레바논 남부는 쑥대밭이 됐다.

27일(현지시간) 레바논 빈트 즈베일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동료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사진=AFP)


미사일 15만기 보유…하마스보다 훨씬 강력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껄끄러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헤즈볼라는 하마스보다 훨씬 강한 군사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 안보단체 알마연구·교육센터는 2만5000~3만명 병력에 헤즈볼라가 미사일 15만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더욱이 헤즈볼라 대원들은 시리아 내전에서 활동하면서 실전 경험도 쌓았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헤즈볼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히 무장한 비국가 군대 중 하나다”고 말했다.

다만 투쟁 일변도 헤즈볼라로 인해 레바논 경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테러단체로 지정된 헤즈볼라 때문에 레바논 경제까지 후폭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2020년 베이루트항 폭발 사고로 드러난 부패 스캔들에도 헤즈볼라가 얽혀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친(親)헤즈볼라 세력이 과반 의석 수성에 실패한 배경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현재 내각 공백과 최악의 경제 위기가 겹친 상황에서 이·팔 전쟁에 휘말린다면 레바논을 폐허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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