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명쾌하게 결론 나지 않느냐가 중요합니다. 처음엔 구분이 쉬웠습니다. 작년 초부터 사람들이 백신을 맞으면서 경기가 돌기 시작, 급증한 주문량 탓에 물건 배송이 늦춰졌습니다. 명백한 수요의 영향입니다. 그러다 작년 여름 델타가 터져 동남아 공장이 멈춰 섰고, 몇 가지 부품이 없어 제품을 완성시키지 못하게 됐습니다. 공급의 영향입니다.
마치 도로가 막힌 게 원래 차가 많아서인지 길 한복판에 차 사고가 나서인지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격입니다. 막힌 기간이 오래될수록 구별해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몇몇은 “왜 이 길만 막힐까”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애초 도로 자체가 넓었다면 병목 현상은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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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농무부는 올해 미국 플로리다주의 오렌지 생산량을 4450만 박스(90파운드 기준)로 예상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이후 가장 적은 규모라고 합니다. 원인은 감귤녹화병이란 치료할 수 없는 전염병이 오렌지 농장을 휩쓸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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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Commodity) 가격엔 공급과 수요 외에도 투기적 수요나 가수요란 요인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폭등 뒤엔 폭락이 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가격 변동에서 차익을 내보려는 펀드들이나 원자재가 필요 없어도 쟁여놓으려는 수요는, 변곡점이 지났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매도하기 때문입니다. 진성 수요도 너무 비싸면 더 이상 주문을 넣지 않습니다.
오렌지 주스 선물은 작년 한 해 가장 뜨거운 원자재 중 하나였던 목재(lumber) 가격 추이를 연상케 합니다. 백신 접종이 진행되며 수요가 살아나면서 작년 초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목재가격은 지난 4월 정점을 찍고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델타 변이를 만나 여름부터 다시 상승 추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연말엔 오미크론을 만나 6개월 만에 1000달러선을 다시 넘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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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은 2005년 처음 감귤녹화병이 퍼질 때 ‘곧 끝나겠지’란 생각을 했었을 겁니다. 이후 재현되는 전염병 확산을 겪을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겠지’란 생각을 했을 수 있습니다. 게으르고 어리석었다고 할 수 만은 없는게 사실 감귤녹화병이 다시 나타날지, 아닐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오렌지 나무를 무턱대고 많이 심을 순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다 전염병이 더는 찾아오지 않는다면 창고에 쌓여 있던 오렌지는 급하게 재고정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란 마음가짐이 오히려 오렌지 농장 주인으로선 합리적인 대응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플로리다의 오렌지 재배 면적은 감귤녹화병이 발견된 뒤 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줄어 현재 재배 면적은 2001년 대비 절반이라고 합니다. 지금 오렌지 주스 가격이 오르는 것을 감귤녹화병 탓만 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이미 감귤녹화병에 취약하기 그지없는 공급 부족의 환경이 조성돼 있었던 겁니다.
ESG 눈치보는 석유, 가격 오르든 캐펙스가 늘든
그렇다고 석유회사들이 앞으로 케팩스를 늘릴까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트렌드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지금의 원유 등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는 러시아 때문이라고 만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10년간 지속된 구경제 부문의 투자 축소가 가격 상승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며 “설비투자가 늘거나 가격이 계속 오르거나 둘 중 하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다 해도, 결과는 몇 년 후에나 나옵니다. 팻 갤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부족이 2023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미국 상무부는 전 세계 150개 반도체 회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취합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금 수요가 2019년 수준보다 20% 더 많은 등 최소 6개월간 반도체 쇼티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궁즉통, 캐펙스 늘리는 기업에 이목 쏠린다
투자를 안 하든 지금부터라도 투자를 하든, 당장의 수요를 충족시킬 만한 공급은 불가능하단 점에서 원자재든 부품이든 가격이 더 오를까 하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물론 오미크론을 끝으로 코로나가 엔데믹(풍토병)이 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하루아침에 화해한다면, 재난지원금을 다 쓴 미국인의 소비 여력이 떨어진다면 등 가격 상승을 촉발한 요인들이 일거에 제거된다면 공급이 얇더라도 꽤 안정적인 상황이 찾아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투자자라면 이러한 확률에 맘 편히 베팅할 수 있을까요. 델타와 오미크론을 거치며 손을 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에야 말로 공급 병목이 끝나겠지’ 보단 ‘본질은 공급이 얇다는 것이었고, 변이가 또 나타난다면 큰 손실을 볼 수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인플레이션에 적극 베팅하기보단 어느 정도 이를 헷지할 수 있는 포지션은 미리 잡아놓아야 원자재값 폭등이란 ‘재앙’은 면한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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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팀장은 “2000년엔 미국발 과잉투자, 2010년엔 중국발 과잉투자가 문제였다면 올해는 ‘과소투자’가 문제인 것 같다”며 “무형자산과 연구개발(R&D)에만 투자하다 보니 유형자산엔 너무 투자가 안 됐지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의외로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었으며 새로운 투자는 가격 상승이 나타나는 곳으로 몰려드는 식으로, 궁극적으론 그렇게 문제가 풀려갈 것 같다”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