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탐구생활] 레임덕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87년 체제 이후 역대 대통령 모두 레임덕 경험
文대통령, 총선 이후 정점으로 지지율 내리막길
부동산정책 실패로 혼란 극심에 민심이반 가속
  • 등록 2020-08-10 오전 6:00:00

    수정 2020-08-10 오전 6:00:00

문재인 대통령과 노영민 비서실장이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윤종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초대 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레임덕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87년 체제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은 모두 ‘레임덕’을 겪었다. 5년 단임제의 특성이다. 임기 초·중반 무소불위 권력을 누렸지만 후반에는 몰락했다.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거쳐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마찬가지였다. 지지율이 폭락하면서 국정 장악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마저 등장했다. 특히 대선국면이 본격화되면 권력의 중심추는 현직 대통령에서 미래 권력인 차기주자에게 급격하게 쏠렸다. 레임덕은 식물 대통령의 시작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까? 21대 총선 직후만 해도 예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레임덕 없이 퇴임하는, 최초의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도 만발했다. 가능한 기대였다. 대통령 지지율 70% 안팎, 민주당 지지율 50% 안팎이었다. 거칠 게 없었다. 게다가 보수는 회생 불가 수준으로 ‘폭망’했다. 총선·대선·지방선거를 거쳐 21대 총선까지 전국단위 선거에서 4번 연속 패했다. 보수 야권에서는 차기 대선을 포기하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비관론마저 나왔다. 민주당의 대선 승리는 예약된 코스였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던 것일까?”

순식간에 모든 게 바뀌었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던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최악의 위기 상황이다. 땜질식 규제로 점철됐던 부동산정책이 뼈아프다. 시장은 초강력 규제에도 현란한 변신을 거듭하며 정부대책을 비웃었다. 세간에는 “정부를 믿은 게 바보다. 차라리 박근혜정부 때 집을 샀어야 한다”는 후회가 넘쳐난다. 민심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다. 참여정부 시즌2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최악의 자충수도 나왔다. “판다 안판다”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의 다주택 처분 과정은 한편의 코미디였다. 내로남불의 ‘끝판왕’이었다.

총선압승으로 벌어놓은 점수를 다 까먹었다. 대통령 지지율은 고작 40%대 중반이다. 물론 역대 대통령 임기 4년 차보다 월등히 높다. 문제는 호재는 별로 없고 악재만 가득하다는 것이다. 지지율 상승의 동력이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중단됐다. ‘하노이 노딜’ 이후 1년 6개월간 북미간 진전이 없다. 오는 11월 미 대선 이전 대화 재개 가능성도 희박하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제상황도 여전히 위태롭다. 더 큰 위기는 부동산시장 대혼란이다. ‘집값안정’이라는 대전제를 부정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다주택자, 1주택자, 무주택자 모두 불만이다.

“도덕적 권위 무너진 노영민…시장 신뢰 잃은 김현미”

반전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까? 주목할 점은 청와대 참모진 개편의 폭과 시기다. 이후 순차 개각 여부에도 눈길이 쏠린다.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신중과 장고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며 전광석화 교체를 단행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정반대다. 오히려 “전쟁 중에 장수 교체는 없다”는 쪽에 가깝다. 대통령의 인사는 향후 국정운영의 분명한 시그널이다. 도덕적 권위가 ‘완벽히’ 무너진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과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잃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교체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촛불을 들었던 상당수 국민들이 이미 등을 돌렸다. 위기를 돌파해낼 것인가 아니면 기나긴 레임덕의 늪 속으로 빠져들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도중 MB정부 시절 ‘광우병 반대 촛불시위’이나 박근혜정부 시절 ‘세월호 정국’과 같은 위기 상황이 없었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지난해 하반기 이른바 ‘조국사태’ 정국이었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지지율 40%가 위태로웠다. 최근 지지율은 이에 근접해가고 있다. 만일 추후 정국반전에 실패한다면 지지율 추가 하락은 피할 수 없다. 이는 곧 레임덕의 시작이다.

“보수·진보 10년 집권의 징크스는 깨질까?”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올해 연말까지다. 더구나 정기국회 마무리 이후 차기 대선 레이스도 본격화된다. 특히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재보선 이후 정국은 차기 주자들의 시간이다. 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급감한다. 여야 차기 주자들의 동의없이 무언가를 새롭게 추진한다는 게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연말을 시작으로 내년 4월 이후 대통령 레임덕이 보다 본격화하면서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희망적 요소는 두 가지다. 민주당 대선경선에서 ‘문심(文心)’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점과 보수진영에서 아직 확실한 차기주자가 없다는 점이다.

87년 대선 이후 한국정치는 보수·진보가 10년씩 번갈아 집권해왔다. 노태우·김영삼(보수) 김대중·노무현(진보) 이명박·박근혜(보수)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10년 주기 집권설’이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레임덕에도 대선에서 승리했다. 징크스에 따르면 차기 대선에서 진보진영 승리가 유력하다. 정부 공언대로 부동산정책이 성공적으로 연착륙하면 민주당의 재집권도 가시권이다. 다만 참여정부 말기와 유사한 흐름이면 백방이 무효다. 실제 IMF 외환위기와 국정농단·탄핵사태와 같은 메가톤급 악재로 촉발됐던 현직 대통령의 레임덕은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10년 주기 집권설이라는 징크스가 유지되든 깨지든 모든 건 국민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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