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국내 보툴리눔 독소(일명 보톡스) 제조업체
휴젤(145020)은 자사의 최대주주인 동양에이치씨와 미국계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이 9275억원 규모의 포괄적 경영권 양수도 본계약을 체결했다고 5일 공시했다. 국내 바이오벤처 업계 역사상 창업자가 회사를 성장시켜 외국 기업에 1조원대에 넘긴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계약은 지난 4월 양사가 맺은 예비적 주요투자조건(term sheet)에 이어지는 것으로 베인캐피털이 설립한 외국법인인 LIDAC(Leguh Issuer Designated Activity Company)와 동양에이치씨 사이에 체결됐다. LIDAC는 동양에이치씨의 주식 4만주 전량을 4727억7600만원에 인수하게 되며 휴젤은 LIDAC를 대상으로 3546억7812만원(98만5217주, 주당 36만원) 규모의 3자 배정 유상증자와 1천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LIDAC는 다음달 14일까지 매수대금을 동양에이치씨에 납입해야 한다. 휴젤 관계자는 “4월 체결한 예비적 주요투자조건은 법적 효력이 없어 협상이 어긋날 가능성이 있었다”며 “이번에 체결한 본계약은 법적 효력이 있는 만큼 매각이 차질 없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휴젤은 2001년 홍성범 당시 BK동양성형외과 원장과 문경엽 대표가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로 보톡스인 ‘보툴렉스’, 필러인 ‘채움’이 대표품목이다. 2006년 강원도 춘천에 세운 보톡스 전용 공장은 GMP(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 인증을 받았다. 지난 2015년 12월 코스닥에 상장했으며 지난해 매출은 1242억원, 영업이익은 633억원을 기록했다.
업체 측은 이번 매각을 국내 바이오벤처의 기술력이 해외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은 성공 사례로 해석하고 있다. 휴젤은 2002년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을 수거해 섞은 후 배양해 보톡스 균 분리에 성공했다. 휴젤 관계자는 “5년 동안 꾸준히 신흥국 시장에 진출한 것을 비롯해 미국, 유럽, 중국 등 3곳에서 동시에 임상 3상시험을 진행하는 국내 보톡스 제조사는 휴젤이 유일하다”며 “베인캐피털 측이 휴젤에 1조원대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은 그만큼 휴젤의 미래 가치를 인정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매각 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휴젤의 공동창업자인 홍성범 현 상하이 서울리거병원 원장과 문경엽 휴젤 대표는 각각 2994억원, 1463억원을 벌게 된다. 이 둘은 동양에이치씨의 지분을 각각 63.3%, 30.9%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에이치씨는 휴젤의 지분을 24.36% 보유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둘은 지난 1월 경영권 분쟁을 벌이며 더 이상 동업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이가 악화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매각을 성공적인 ‘벤처 엑시트(venture exit)’ 사례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한 바이오벤처업계 사장은 “외국에서는 창업자가 회사를 키워 매각하는 사례가 흔하지만 우리나라는 창업자가 회사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며 “회사 내부 사정까지는 잘 모르지만 매각 자체는 기업 경영의 측면에서 자연스러운 형태 중 하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