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어도, 3자가 고발해도 처벌…명예훼손죄 개정 움직임 본격화

일부 시민단체, 명예훼손 고발을 이슈몰이로 악용
우리나라는 명예훼손 증가세…다른 나라는 폐지 추세
사실적시에 명예훼손죄 비판 커…민사로 풀어야
  • 등록 2016-10-24 오전 6:30:00

    수정 2016-10-24 오전 6:30:00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방송인 김제동씨는 최근 명예훼손 및 협박 혐의로 고발당했다. 지난해 7월 한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4성 장군 부인에게 아주머니라고 했다가 13일 동안 영창을 다녀왔다’고 거짓 농담을 해 군의 명예와 이미지를 실추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김씨를 고발한 단체는 정작 군이나 군 관련 단체가 아닌 ‘서민민생대책위원회’라는 시민단체였다.

최근 군대관련 발언으로 유명 방송인 고발된 사건을 계기로 명예훼손죄를 개정 문제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조계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현 명예훼손죄는 허점이 많아 악용될 소지가 클 뿐 아니라 헌법에도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 내 명예훼손을 ‘제3자’가 고발?…친고죄로 제한해야


현행법에 따르면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조항은 크게 △명예훼손 △사자(死者)의 명예훼손 △출판물 등에 따른 명예훼손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 사자의 명예훼손만 사망한 이의 친족 또는 자손들만 고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로 정해놨을 뿐 나머지는 제한이 없다. 군과 관련이 없는 시민단체가 김제동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의 경우 해당 사건과 관련 없는 시민단체 등 제3자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해 수사가 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월호 당일 대통령 행적에 의문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명예훼손으로 처벌해달라고 고발한 이는 보수단체인 자유청년연합이었다.

또 지난해에는 전남 순천 지역의 한 변호사가 “국정교과서 반대자는 국민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발언을 문제 삼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명예훼손 고발이 시민단체 등의 홍보 및 정치활동의 일환으로 변질됐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명예훼손 사건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7년 1만 201명에 불과했던 명예훼손 사건은 지난해 1만 5207명으로 8년새 49%(5006명)나 증가했다.

금태섭 의원실 관계자는 “명예훼손 고발이 악용되면 고발당한 사람들은 큰 부담감을 느끼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명예훼손은 사건 관계자만 고소·고발할 수 있는 친고죄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근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발당한 방송인 김제동씨. (사진 = 연합뉴스)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세계각국 폐지 추세

특히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현행법은 신속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형법 307조 1항에 따르면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승우 법무법인 법승 변호사는 “허위 사실에 따른 명예훼손은 처벌할 필요성이 있지만 사실을 이야기해도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은 민사소송 등을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예훼손죄는 세계적으로 폐지추세다. 미국의 경우 뉴욕, 캘리포니아, 일리노이스, 텍사스 주 등이 명예훼손에 대해 위헌처분을 내리거나 폐기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명예훼손 비형사범죄화 캠페인을 벌인 후 많은 유럽 국가들이 명예훼손죄를 없앴고 유엔(UN) 인권위원회도 지속적으로 명예훼손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사실적시는 명예훼손으로 처벌하지 않으며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명예훼손죄는 경우 모두 친고죄로 제한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명예훼손법에 대한 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태섭 의원이 지난 9월 사실에 관한 명예훼손죄를 처벌하는 규정을 삭제하고 명예에 관한 죄는 친고죄로 정해 악용을 방지하자는 취지의 형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오경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한국형사소송법학회 부회장)는 “명예훼손죄의 경우 수사도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된 측면이 크다”며 “학계에서도 명예훼손죄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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