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얼굴 '어진' 수염 한올까지 정확하게

조선 임금 '용안'에 담긴 신비는
'당대 최고' 도화서 화원이 그려
진전 봉안 등 거국적 관심 반영
1954년 피란지 부산서 화재로 대부분 소실
태조·영조·철종·고종·순종 정도 남아
  • 등록 2015-12-14 오전 6:15:10

    수정 2015-12-14 오전 6:15:10

태조 어진(사진=문화재청)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태조, 영조 등 TV 사극이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조선시대 왕들의 실제 얼굴은 어땠을까.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이 내년 2월 14일까지 여는 ‘조선 왕실의 어진(御眞)과 진전(眞殿)’ 특별전에서는 조선 왕의 용안이 풍기는 신비로운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어진은 왕의 초상화를, 진전은 왕의 초상화를 봉안하고 의례를 행하는 건물을 뜻한다.

◇‘어진’ 수염 한올도 최대한 정확하게

왕의 초상화인 어진은 당대 최고로 꼽힌 도화서 화원들이 그렸다. 터럭 하나 수염 한 올이라도 틀리지 않고 최대한 정확하게 그리는 원칙을 따랐다. 사진기술이 없던 시절 조선시대 임금의 얼굴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어진 덕분이다.

현존하는 ‘영조 어진’은 영조 나이 51세에 그린 것을 1900년에 조석진·채용신 등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가 다시 그린 이모본이다. 영조 어진의 경우 수염이 매우 섬세하게 묘사된 게 특징이다. 또 안면에는 도화색 홍기가 있는데 이는 영조 자신의 안색에 홍윤기(紅潤氣)가 짙었다는 ‘승정원일기’에 나타난 기록과 부합한다.

왕위에 오르기 전 젊은 영조를 그린 ‘연잉군 초상’도 이색적이다. 조선미 성균관대 예술학부 명예교수는 “눈의 안두와 안초에 홍기를 삽입해 사실감을 높였다”며 “조선왕조의 초상화에서 중시하는 수염은 영조가 어린 탓인지 다만 몇 올만 나타나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태조 이성계는 일국의 시조인 만큼 상당수의 어진으로 제작했지만 현재 전해오는 것은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뿐이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태조 어진’은 익선관을 쓴 청포차림의 정면관(앞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소매 안에 공수를 취하고 의자에 앉은 전신좌상이다. 조선 초기의 초상화법을 대체로 반영해 군주의 기품을 잘 드러내고 있다.

◇조선시대 어진 제작 활발…1954년 부산서 화재로 대부분 소실

언제 처음 어진을 제작했는지는 불확실하다. 삼국시대란 기록이 있긴 하지만 가장 명백한 것은 통일신라시대로 사찰의 벽화형식으로 그렸다. 고려시대는 태조 왕건의 소략본(근래 제작)이 전해오고 있으나 원화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조선에서야 어진 제작이 본격화됐다. 태조부터 순종까지 엄청나게 제작했다. 조선 왕조는 국초부터 태조 진전을 서울의 문소전, 영흥의 준원전, 평양의 영숭전, 개성의 목청전, 경주의 집경전, 전주의 경기전 등 무려 6곳에 세우며 거국적 관심을 반영했다. 임진왜란 이후 전국에 흩어져있 던 진전 봉안 어진은 1921년 모두 신선원전으로 집결·봉안됐는데 모두 48점이었다.

아쉬운 것은 남아 있는 어진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 조선의 어진 48점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피란지인 부산 용두산 벽돌창고로 옮겨갔다. 하지만 1954년 12월 화재가 나면서 궁중유물 3400점과 함께 대부분이 소실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현존하는 조선의 어진은 태조·영조·철종·고종·순종 정도다. 순조·익종 어진은 절반 이상 타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남아 있다.

영조 어진(사진=문화재청)
연잉군 초상(사진=문화재청)
고종 어진(사진=문화재청)
순종 어진 복원 묘사도(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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