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사태..정전에서 복구까지

일단 조기 정상화 성공..대외 신뢰도 회복해야
반도체 수급불안 걱정..가격 오르나?
  • 등록 2007-08-05 오후 4:55:15

    수정 2007-08-05 오후 6:00:13

[이데일리 양효석기자] 몇 해 전 하이닉스반도체 공장이 간밤에 정전됐다. 이런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자 하이닉스에는 국내외 언론의 문의가 쇄도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히 정전시간이 몇분에 불과했고 비상전력장치가 가동돼 라인가동이 바로 재개됐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소동은 가라앉았다. 당시 업계 전문가들은 정전이 몇시간 정도 계속됐더라면, 반도체 시장에 적지않은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하이닉스반도체가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나 독일 인피니언 정도 업체들과 경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지난 3일 발생한 세계 1위 메모리업체 삼성전자의 라인가동중단은 얼마나 큰 사상초유의 사태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허술한 시설관리 지적..그러나 신속복구 높이 평가

삼성전자(005930) 기흥사업장 주요라인은 8시간이 넘게 정전됐다. 라인이 모두 복구돼 정상가동 되는데는 20시간 정도 걸렸다. 이렇게 장시간 정전이 지속된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사상 초유 사태라는 말도 나온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허술한 시설관리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삼성전자는 이번 정전사태의 원인이 기흥사업장 내부변전소 배전반에서 스파크가 발생, 3일 오후 2시30분께부터 시스템이 다운됐다고 설명했다. 천재지변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 99년 대만의 반도체 가동중단은 지진에 따른 천재지변이었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공장은 장비가 한번 멈춰서면 다시 정상궤도로 오르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돼, 전력공급 시스템이 정전에도 견딜수 있도록 완벽에 가깝다. 전력공급과 관련된 모든 시설계통은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 공장은 리히터규모 6.0 이상의 지진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내진설계와 함께 다중안전장치를 마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전력의 전력공급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모르지만, 내부 설비 이상으로 정전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게 상식적이다. 한국전력은 이번 정전사태와 관련해 "전력공급에 이상이 전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삼성전자측은 정전발생시 무정전 전원공급장치(UPS)가 즉각 가동, 안전시설과 핵심시설은 정상 가동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의 설명대로라면 결국 정전이 되면 핵심 일부 시설에만 전력이 공급되기 때문에 라인 전체로 보면 가동이 중단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더더욱이나 전력계통 설비관리가 철저해야 했다.

한편 정전사태 발생후 윤종용 부회장과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 등 삼성전자 수뇌부들이 현장에서 피해상황과 규모를 파악하고 복구작업을 직접 지휘하는 등 신속히 대응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한 부분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적어도 일주일 이상 복구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였지만 삼성전자는 만 24시간이 안돼 6개 라인 전체를 완전히 정상가동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피해규모 역시 일부 전문가들은 사태 초기에 7000억원 이상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지만, 삼성전자는 500억원 안팎 정도로 밝히고 있다.

그만큼 신속한 대응이 피해액을 크게 줄였다는 것이다.

윤 부회장은 "비공개가 원칙인 반도체 라인이지만, 필요하다면 정상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며 조기복구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일단 한숨 돌렸지만..무형피해 우려 크다

삼성전자는 4일 오후 12시부터 라인이 정상가동되면서, 보다 구체적인 사고원인 규명에 주력하고 있다. 원인파악과 피해규모 조사작업이 끝나면 책임소재를 따져 자연스런 문책성 인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내부 분위기는 문책을 논하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예기치 못했던 비상사태 발생에도 불구하고 전체 임직원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조기복구에 나서는 등 사업부의 일체감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황창규 사장이 총괄사장직만 맡고 메모리사업부장 자리를 조수인 부사장에게 넘기는 등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사장급 인사를 단행한 직후 터진 '악재'라는 측면에서 어떤 식으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추가인사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는 전망이 대세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유형 피해보다 무형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에 대해 삼성전자측은 "거래선에게 공급에 문제가 없음을 알리고 주요 거래선들이 이에 대해 충분히 수긍하는 등 대외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거의 없다"며 자신했다.

또 외부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조기복구에 성공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삼성전자의 위기대응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도 아닌 내부시설 문제에 따른 정전으로 장시간 라인가동이 중단된데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반도체 가격 올라가나

정전사태가 발생했던 지난 3일 반도체 중개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오후 6시(현지시간) 기준 낸드플래시 8기가비트(Gb) 제품은 싱글레벨셀(SLC)이 평균가 19.02달러, 다중레벨셀(MLC)이 평균가 8.92달러로 전날보다 각각 6.31%, 7.41% 급등했다.

최근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급등세에다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의 절반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이번 생산 중단사태까지 겹쳐 낸드플래시 스팟가격은 당분간 급등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반도체와 같은 반도체기업들은 보통 정기거래선과 고정거래가격을 회사별로 달리 계약하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급차질이 며칠씩 이어지는 심각한 사태가 아니라면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이번 정전사태로 클린룸나 핵심장비의 손실률이 얼마나 발생했고, 정상수율로 올리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현재 재고량으로 거래선 공급은 정상적으로 이룰 수 있는지 등이 변수"라면서 "주말을 지나 사태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액은 얼마일까

사고가 발생한 이후 대만의 지진 사태를 경험한 바 있는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의 직간접적인 피해규모를 7000여억원 까지 내다보는 등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 2000년 대만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났을 때 메모리 가격이 순식간에 6∼7배씩 폭등한 전례를 떠올리며 "아무리 빨리 피해를 복구한다 해도 낸드 플래시 생산에 큰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 3분기 낸드 생산량의 15%가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왔다.

삼성전자는 대만지진사태와 이번은 엄연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삼성전자는 "지진은 정밀한 반도체 생산 장비를 뒤흔들어 놓기 때문에 모든 기계를 다시 손봐야 하지만 정전은 단순히 흐름이 중단된 것이어서 성격이 다르다"라며 "전원이 공급된 지 12시간 정도 지난 후 라인 가동은 정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으며, 손실액도 최대 400억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투입됐던 웨이퍼 폐기 문제에 대해서도 삼성전자는 업계의 우려가 과장됐다는 입장이다. 가동이 중단됐던 6개 라인에는 월 평균 100만장, 하루 평균 3만∼4만장의 웨이퍼가 투입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웨이퍼가 투입되면 보통 1달간 300여건의 공정을 거치는데 공정과 공정 사이에는 웨이퍼를 안전 박스에 별도 보관하기 때문에 공정 대기 물량은 전혀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웨이퍼는 기계가 갑자기 멈출 당시 기계 안에 물려 있던 일부 물량"이라고 말했다.

라인의 수율 문제와 관련해서도, 삼성전자는 라인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으며 업계의 우려와 달리 라인의 수율도 사고 이전 수준으로 바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반도체 전문가들은 기흥공장이 복구됐다 하더라도 당분간 기존의 정상수율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피해 보험처리 가능한가

한편 삼성전자는 지난달 13일 반도체와 LCD, 정보통신 사업장의 화재, 사고, 휴지 등으로 인한 손실을 많게는 5조5000억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는 손해보험을 체결했다.

이 보험은 휴지, 즉 라인가동 중단으로 인한 손실도 보장하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이번 정전에 따른 손실 대부분을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피해 수준은 라인 가동 이후 생산된 제품의 수율 등을 종합적으로 계산해 봐야 알 수 있으며 보상가능 여부나 세부 계약조건을 따져봐야 한다.

사고 후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화재도 보험 가입자인 삼성전자의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사고 현장에 담당 직원들을 급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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