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정명수기자] 주식시장이 어려울 때 단골로 등장하는 해법이 전화사채(CB), 교환사채(EB),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투자해보자는 것이다. 이들은 채권의 성질과 주식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
주가가 강할 때는 주식의 성질이, 주가가 약할 때는 채권의 성질이 부각된다. OTC파생상품에서 합성(synthetic)의 경우와 잘 일치한다. 합성이 가능하다면 분해도 할 수 있다. CB나 EB의 전환권·교환권과 채권을 나누어서 따로따로 팔 수도 있다.
◇주식연계채권의 양지와 그늘
CB는 지난 해부터 계속된 온갖 벤처 비리, 게이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나 지분 위장 등의 편법에도 동원됐다. 해외에서 발행되는 CB 등은 우회 투자와 주가 상승시 물량 압박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주식연계채권의 발행 추이를 보면 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된 배경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주가지수와 주식연계채권 발행
IMF 이후 종합주가지수와 CB, EB 발행 추이를 보면 98년말부터 99년초 주가지수가 상승하는 길목에서 주식연계채권이 대거 발행된 것을 볼 수 있다. 이 채권들은 해를 넘겨 2000년 주가가 곤두박질 할 때 고스란히 물량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CB, BW 등이 신용경색으로 자금 줄이 막힌 기업에 숨통을 열어준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지난해 중소기업청과 신용보증기금 등이 나서서 벤처기업들의 BW, CB 등을 풀링(pooling)하고 프라이머리CBO를 발행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주식연계채권이 장기화되고, 전환가격 등 옵션 조항 역시 장기화된다면 주가 희석의 문제, 안정적인 자금 조달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대외 신용도 개선, 장기투자기관에 투자 기회 부여 등의 순기능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채권 공급 부족에 허덕이는 현재 채권시장에서 주식연계채권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주식연계채권 자체보다는 이들 채권에 대한 단선적인 투자, 단기적인 시각이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물론 주식연계채권의 악용을 막고, 장기 투자를 유도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예를들어 해외발행 CB 등을 내국인이 취득할 때는 일정기간(1년 이상) 전환권 행사를 금지한 것과 같은 것이다.
◇있는 것을 활용하라..2차 가공상품
채권시장은 장기채권 공급이 부족한 묘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까지는 예보채가 장기물 공급원의 역할을 했지만 올해는 발행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내년부터 예보채 발행이 재개되더라도 이는 신규 발행이 아니라 차환 발행이다.
발행은 정체인데 채권 수요는 확대 추세다. 연기금 등 장기투자기관의 몸집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고 은행, 투신, 자산운용사 등의 기본적 채권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자금시장에서 국채 또는 국가보증채권 등 무위험 채권은 `재정` 이라는 측면에서 `적절한 것`이 가장 좋다. 결국 채권시장은 회사채 투자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다.
◆회사채 발행과 회사채 수익률
회사채는 IMF 직후 치솟는 금리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 꾸역꾸역 발행됐다. 5대 그룹을 중심으로 자금을 미리 확보해야한다는 강박관념도 작용했다. 이것이 `대그룹 부채비율 200% 제한`으로 제동이 걸린 후 회사채 발행은 안정적인 상태에 들어간다.
99년 대우사태가 터지면서 신용경색이 만성화됐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났다.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는 시장의 외면을 받았고 등급이 높은 A급은 물건이 없어서 투자를 못했다. 지난해부터는 BBB급 회사채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나마 회사채가 나와도 ABS 형태여서 엄밀한 의미의 `크레딧 베팅`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크레딧 베팅은 신용도에 따라 높은 금리를 얻을 수 있는 채권에도 투자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회사채 자체가 발행되지 않으면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연기금과 보험 등 장기투자기관들은 신종채권이나, 달러표시 크레딧 링크 노트(CLN), ABS 등으로 투자대상을 확장할 수 밖에 없다.
OTC파생상품은 이같은 투자자들의 욕구를 해소해준다. 주가지수를 채권화해 주가 수준에 따라 일정 금리를 제공하거나, 신용파생 상품을 만들어 크레딧 베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IMF 당시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ABS를 발행 묶인 자산, 부실 자산을 채권화했던 것도 같은 원리다.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채권화함으로써(2차 가공) 새로운 투자대상을 만드는 것이다. 초기 OTC파생상품도 채권시장의 이 같은 욕구에 포커스가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의 울타리를 넘어서
OTC파생상품의 가장 매력적인 기능은 `법의 울타리`를 타고 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OTC파생상품의 역사는 `규제`의 역사이기도 하다.
①`규제`가 있어야 `솔루션`이 존재한다.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으로 OTC파생상품 디자이너는 높은 연봉을 받는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수수료가 높다. ②일단 솔루션이 구상되면 네트워크가 작동해야한다. 투자자의 욕구를 해소해 줄 수 있는 원재료를 가진 사람을 찾아,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마케팅 능력이다. ③마지막으로 종자 돈(또는 크레딧)이 있어야한다. 일정한 자금과 크레딧을 확보해야 상품 디자인에 필요한 북(book)을 운용할 수 있고 상품 판매도 가능하다.
앞서 제시한 KT EB 투자가 대표적이다. KT에 대한 외국인 투자제한이 없었다면, EB 청약에 외국인도 참여할 수 있다면 굳이 OTC 딜을 구상할 필요가 없다.(① 규제 조건 만족)
KT의 외국인 한도를 넘어서 투자할 수 있도록 투신권에 외수펀드를 만들고, 이 펀드로 하여금 KT 주식과 EB에 투자하도록 한다. 외국인 투자자는 외수펀드의 수익증권을 사고, 실질적으로 외수펀드 운용을 지시한다. KT EB에 외국인이 직접 투자를 할 수는 없지만 외수펀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한 셈이다.
규제에 대한 해법을 찾았다. 이제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마케팅을 하고 국내 투신사를 설득, 외수펀드를 설정하도록 한다. 법적인 문제에 대비한 서류 작업도 꼼꼼하게 챙긴다. 세일즈에서 서류 작업까지 인적 네트워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② 네크워킹과 마케팅 능력)
다음으로 KT EB를 확보하기 위해 증권사는 청약에 들어간다. 증거금을 내고 주식을 배정받고, 이에 해당하는 EB도 확보한다. 확보한 KT 주식과 EB는 투신사 외수펀드에 넘겨준다. 외국인 투자자가 투신사의 외수펀드 수익증권을 산다. 증권사는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딜을 마무리한다. 이 단계에서 청약자금과 신용은 기본이다.(③ 종자 돈과 크레딧)
(시리즈 ③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