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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경제지 기자입니다. 평론가나 학자보다는 식견이 짧지만 ‘가성비’ 좋은 하이브리드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영화 속 경제 이야기를 제멋대로 풀어봅니다. [편집자주] ※글 특성상 줄거리와 결말이 노출될 수 있습니다.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피라미드, 유사수신 그딴 소리 다 잊어버려! 이제 새롭게 시작합니다.”
수천명의 인파가 운집한 실내의 한 공연장. 원네트워크의 진회장(이병헌)은 눈물로 호소합니다. “세상의 오해를 이해로 회원들이 받은 수모를 부러움으로 바꾸자. 그게 내 책임이고 역할입니다”라고요. 저축은행 인수를 선언하며 금융투자회사로 도약하겠다는 진회장님의 선언에 회원님들은 환호합니다. 그런 그를 조용히 앉아 응시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네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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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스터’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알려진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했습니다. 실화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허구의 인물이나 배경 등을 추가해 새로 가공한 것이죠.
조희팔은 2000년대 중반 피라미드 회사를 차려 4조원대 사기 피해액을 낸 인물입니다. 초기엔 일정 수익을 주면서 새로 회원 가입을 유도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였죠. 사기 행각이 드러나자 중국으로 밀입국, 이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지 목격설이 나오면서 아직까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진회장의 이름은 진현필입니다. 진현필과 조희팔, 이름부터 동질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진회장은 한국에서 사기 행각이 들통나자 위장 사망 후 필리핀에서 더 큰 건을 구상합니다. 하지만 독기(?)를 품은 김팀장-박장군 연합군에 결국 무릎 꿇습니다. 진회장의 계좌를 탈탈 털어낸 후 피해자들에게 피해액을 돌려주는 훈훈한 모습으로 마무리되죠. 조직 내부의 배신과 반목이 비교적 쉽게 일어나는 부분은 고개를 갸웃하게도 합니다. 다만 사기로 뭉친 집단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기도 쉽지 않겠냐고 반문하니 그럴 듯 하네요. 정작 수천명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놓고서는 박장군의 배신 소식에 “세상에 밑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라고 혀를 차는 진회장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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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네트워크의 다단계처럼 ‘옛날 방식’이 잘 통하지 않으면서 금융투자시장에서는 허울 좋은 청사진을 내세워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가 득세하자 이를 이용한 사기 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실체 없는 ‘가상화폐’를 만들어 놓고서는 암호화폐공개(ICO)를 할 것이라며 사전 투자자를 모집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실제 효용가치가 없는데도 돈을 긁어모아 빼돌리는 방식이죠. 지난해 미국에서는 유명 복서인 메이웨더를 홍보모델로 앞세운 센트라코인(CTR)이 사기 판정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여름 ‘돈스코이호 사건’이 강타했습니다. 150조원 가치의 금괴가 실린 것으로 추정되는 침몰선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신일그룹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보물선을 내세워 홍보한 후 관심을 가지는 투자자들에게 다단계 방식으로 가상화폐를 팔기 시작합니다. 뒤로는 적은 금액을 들여 상장사인 제일제강(023440) 인수를 추진합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주식의 주가는 단기간 급등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들은 사기 혐의로 구속되고 맙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신일그룹 실질 세력으로 의심되는 유승진씨가 최근 경북 영천에 금 1000t이 매장된 금광을 발견했다며 가상화폐를 판매하는 비슷한 수법의 사기 형태가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속인 사람이 나쁘지만 속은 사람도 문제 있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주변에서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돈을 탐하는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봉이 김선달이 팔아먹은 ‘대동강 물’이나 보물선, 금광이 아니어도 됩니다. 쉽게 투자할 수 있는 증시에서 테마주가 될 수도 있고 유사투자자문업체를 운영하며 수백억원대 자금을 빼돌린 ‘이희준 사건’처럼 장외 주식이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를 살살 꾀어서 말이죠. 가면을 쓰고 있는 그들의 표정에 속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