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성향에 따라 선택이 다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가에 있어서만큼은 후자를 택했다. 작년 물가급등기 때 우리나라는 전기·가스 요금 등 공공물가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물가상승률 정점이 6% 초반에 그쳤다. 미국, 유럽이 9~10%를 넘나들었던 것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그러나 물가상승이 둔화되는 현 시점에 와서는 이에 따른 비용을 치르고 있다. 물가상승세가 꺾이면서 이틈을 타 눌러놨던 공공물가가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 전국적으로 대중교통 요금 등 공공서비스 물가가 올랐고 내년 서울 지하철 요금 추가 인상과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전망된다. 공공물가 상승은 개인서비스 요금 인상 등으로 이어져 물가둔화세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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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근원상품 물가는 급락, 근원서비스는 ‘게걸음’
통계청에 따르면 11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전년동월비 3.3%로 시장 예상치(3.6%)를 크게 하회했다. 넉 달만에 물가상승세가 둔화된 것이다. 특히 전월 3.8% 상승에서 상승률이 0.5%포인트나 하락했다. 석유류가 0.2%포인트, 농축수산물이 0.1%포인트 가량 물가를 떨어뜨리는 쪽으로 작용했다. 근원상품도 0.2%포인트 물가를 하락시켰다.
물가가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불안 요인들은 상존한다. 근원물가를 상품과 서비스로 나눠보면 근원상품이 3.0% 올라 전월(3.8%)보다 무려 0.8%포인트나 급락했다. 근원상품은 6월~10월 사이 3.8~4.1% 사이를 오가며 더디게 둔화돼왔으나 11월에는 작년 11월 근원상품이 4.6% 치솟았던 영향에 기저효과가 작용하면서 크게 둔화됐다. 그러나 근원서비스는 3.0% 올라 전월(3.0%)과 같았다. 근원서비스는 4월 4.0%에서 8월 3.0%로 하락세를 보였으나 9월 2.9%, 10월 3.0%, 11월 3.0%로 더딘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한은은 수요 압력 약화로 근원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둔화 흐름이 뚜렷하나 누적된 비용 인상 압력에 근원상품 가격 상승률의 둔화 흐름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고 밝혀왔는데 11월에는 이러한 흐름이 뒤바뀐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12월에도 기저효과로 근원상품 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한 달의 흐름이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체 물가를 상품과 서비스로 나눠볼 때 상품 물가상승률이 3.8%, 서비스 물가상승률이 3.0%로 상품 물가상승률이 서비스보다 높지만 둔화 속도에선 서비스가 더 더디게 떨어지고 있다. 상품물가 상승률은 10월 4.7%에서 11월 3.8%로 떨어졌지만 서비스 물가는 두 달 연속 3.0%다.
눌러놨던 공공서비스 인상 억제, 고금리 장기화로 비용 치른다
서비스 물가 둔화 속도가 더딘 이유로 공공서비스 물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공서비스 물가는 4월부터 6월까지 1.0%의 상승률을 보이다 7월 1.2%, 8월 1.7%, 9월 1.8%, 10월과 11월 2.2%로 상승률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올해 전국 각지에서 대중교통 요금이 뒤늦게 오른 영향이다. 11월 도시철도료, 시내버스료, 시외버스료, 택시료 등이 5% 이상 올랐다. 특히 택시료는 20.7% 급등했다.
공공서비스 물가가 오르면서 잡혀가던 개인서비스 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개인서비스 물가상승률은 4월 6.1%에서 8월 4.3%까지 빠르게 하락했는데 9월 4.3%, 10월 4.1%, 11월 4.2%로 둔화폭이 제한적이다. 햄버거, 피자는 11월 각각 16.9%, 10.0%로 올랐고 비빔밥, 설렁탕, 냉면, 죽, 돈까스 등도 5% 올랐다. 이에 외식물가는 두 달 연속 4.8% 올랐다. 외식을 제외한 개인서비스 물가도 두 달째 3.7%다. 간병도우미, 공동주택 관리비, 세탁료, 노래방 이용료, 여객선료 등이 5% 이상 상승했다.
정부의 공공물가 인상 억제, 유류세 인하 정책 등이 물가 급등기때는 물가를 덜 오르게 해 ‘고통’을 줄여주지만 물가가 둔화되는 시기엔 물가 하락을 더디게 만들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은은 11월 경제전망 보고서, 인디고북을 통해 “전기·가스요금은 주요국에 비해 인상폭이 제한되면서 작년 소비자 물가 급등을 완화한 측면이 있는 반면 인상 시기가 이연되면서 파급 영향이 오래 지속되는 측면도 있다”며 “현행 유류세 인하폭(휘발유 25%, 경유 37%)이 축소될 경우 물가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3.5%를 ‘충분히 장기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한은 관계자는 “작년 전기·가스 요금 인상 억제가 국민들의 고통을 줄여줬지만 결국엔 어떤 방식으로든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