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경우도 경제 재건이 국가의 지상과제였던 개발시대에 정신질환자들은 사회와 격리돼야 하는 존재들처럼 치부된 바 있다. 당시에는 ‘생산성’이 개인의 가치를 드러내는 사회적 기준이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생산성이 없거나 떨어지는 이들을 사회는 마치 없는 존재처럼 여겼다. 장애인들이 그랬고, 노인들이 그랬으며, 심지어 가사와 육아 노동을 당연시하면서도 그 노동의 가치는 인정하지 않았던 여성들도 그랬다. 정신질환자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이처럼 사회가 없는 존재처럼 치부해버려 이들을 돌보는 일들은 온전히 가족들의 부담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처럼 사회가 배제하고 차별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또한 비뚤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신질환은 사회생활을 원한다면 드러내면 안 되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정신병동을 찾는 일도 쉬쉬 해야 하는 일이 됐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그래서 더 많은 정신질환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가적 오명이라고 할 수 있는 전 세계 1위의 자살률은 그 이면에 일상화된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과의 관련이 있다. 이제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고, 이를 특정 타인들에게서 벌어지는 일로 치부하며 배제의 대상으로 보던 데서,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며 관리의 대상으로 봐야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드라마가 인상적인 건, 의사, 환자, 간호사를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들은 직업적으로 구분돼 있고 그래서 각각의 역할 또한 다르다. 환자는 아파서 병원에 온 것이고, 의사는 그들을 치료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간호사는 이 양자를 돕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직업적 구분을 벗어나면 이들은 모두 똑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래서 때론 아파서 의사나 간호사도 환자가 되기도 한다. 대장항문과 의사지만 손가락을 꺾는 강박증을 가진 동고윤(연우진)이 그렇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간호사지만 환자에 대한 남다른 다정함이 병이 되어 정신질환을 겪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정다은(박보영)이 그렇다. 이처럼 의사와 간호사 역시 환자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을 담고 있어, 드라마에는 의학드라마에 흔하게 등장하는 영웅적인 인물이 없다. 그저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마음을 담아 수행하는 이들이 등장하고, 그들 역시 정신적인 상처를 입기 쉬운 현실을 애써 버티며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그래서 위계 없이 함께 살아가는 이 정신병동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공동체의 축소판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강제성까지 동원돼야 하는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무조건적인 격리보다는 스스로 자립하고 재활할 수 있는 인프라를 지역 안에 세워 정신질환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첫 회 시작부터 이를 정신과 의사의 목소리를 빌어 화두로 던지기도 했다. “얼마 전에도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잡혔을 때 환청, 환시에 시달리는 조현병 환자였다는 사실이 뉴스에 크게 보도가 되면서 이슈가 됐었죠? 안타까운 건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은 전체 범죄의 0.04%에 불과합니다. 정신질환은 관리의 병입니다. 무엇보다 병원에 빨리 오셔서 관리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신병동이라도 특별한 곳이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아침이 오는 곳이라는 인식의 개선이 출발점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