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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유명했던 강릉에 어떻게 커피가 더해진 걸까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2000년대 초 카페 보헤미안과 카페 테라로사가 출발점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합니다.
보헤미안의 박이추 바리스타는 2000년대 초 카페 보헤미안을 강릉에 오픈했고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도 같은 시기에 강릉에 커피 볶는 공장을 오픈합니다. 자연스럽게 커피 바리스타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강릉을 찾게 됐고 문하생들이 강릉에 카페를 오픈하면서 강릉은 커피로 유명해집니다.
2009년 시작된 커피 축제를 계기로 강릉에는 다양한 커피전문점 거리가 형성되는데 가장 유명한 곳은 안목 해변의 커피거리입니다. 커피거리로 유명해지기 이전의 안목 해변은 강릉에 있는 해변 중 가장 한적하고 관광객 발길이 뜸한 곳이었습니다.
가장 붐비는 곳은 단연 경포 해변이었지요. 안목 해변은 대중교통이 불편해 관광객의 방문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커피거리는 왜 유동인구도 많지 않고 교통도 불편한 안목해변에 생겼을까요?
안목이 커피로 유명해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안목해변의 약점이었던 관광객이 많지 않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커피 거리로 유명해지기 이전의 안목은 한적한 시골 어촌마을이었습니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경포와는 달리 저렴한 동네 횟집과 조개구이집이 많았습니다. 경포 해변은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인데 비해 안목 해변은 지역 주민이 주로 찾는 해변이었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커피 자판기도 모였습니다. 안목은 자판기 커피 한잔과 함께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지역 주민만의 명소가 됐고 이 인기 덕분에 커피 자판기 개수는 조금씩 늘어나 가장 많았을 때는 50여개에 이르렀습니다.
안목에 있었던 수십 개 자판기는 커피 맛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자판기 커피가 다 고만고만한 맛이지 무슨 차이가 있냐고 할 수 있지만 당시 자판기마다 커피, 설탕, 프림의 비율이 조금씩 달라 커피 맛도 약간씩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치 커피전문점마다 커피 맛이 조금씩 다른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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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 해변을 자주 찾는 사람들 사이에는 선호하는 자판기가 정해져 있었고 자판기 커피 맛에 대한 품평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오늘날 커피 전문점이 줄지어 있는 안목 커피 거리에는 1980~1990년대 커피 자판기가 거리 커피를 제공해 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2000년대 초 안목에는 자판기 커피의 바람을 타고 아메리카노를 파는 커피전문점이 최초로 문을 엽니다. 예상과 달리 커피 전문점의 시작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달달이 커피’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아메리카노는 입맛에 맞지 않았고 자판기 커피에 비해 너무 비쌌습니다.
당시 달달한 자판기 커피가 200원 수준이었는데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아메리카노에 자판기 커피의 15배가 넘는 가격을 지불하기는 쉽지 않았겠지요. 특히 안목 해변을 찾는 사람들은 관광객이 아닌 바닷가에 바람 쐬러 나온 지역 주민이었으니 말입니다.
안목 커피거리가 있기까지에는 의외의 조력자도 있습니다. 바로 안목 해변 앞바다에 잠겨 있는 바위들입니다. 이 바위들은 해변에서 몇십 미터 떨어진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데 수중 암초 같기도 하고 인공 조형물 같기도 합니다.
물속에 있는 바위가 커피 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커피축제를 시작으로 안목해변이 커피로 유명해 질 때쯤 안목은 해안침식으로 백사장은 물론이고 해변의 도로마저 유실될 위기에 처합니다. 국가에서 재해위험지구로 지정할 정도였으니까요.
파도에 의한 해안침식을 막기 위해 2016년 안목 해변 앞바다에는 수중방파제가 설치됩니다. 수중 암초처럼 보이는 수중방파제 덕분에 백사장도 조금씩 회복되어 넓어졌고 지금의 커피 거리 조성도 가능해졌습니다.
안목 해변을 지금의 커피거리로 만들었던 일등 공신인 자판기는 예전 그들의 자리를 커피전문점에게 내주고 뒷골목으로 물러났습니다. 자판기 커피가 유행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자판기 커피 한잔을 들고 바닷가를 거닐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세상은 항상 변하고 그 변화의 시작은 아주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생각 말입니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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