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정부는 '파산설' 헝다를 구제할까, 방치할까[김정남의 월가브리핑]

이자도 못 내는 중국 부동산 2위 기업 '헝다'
디폴트 임박…금융 시스템 리스크 옮겨 붙나
금융기관, 채권시장, 중국경제 전방위 공포
제2 LTCM 사태 vs 제2 리먼 사태 '갑론을박'
월가 다수 "정부 개입"…대마불사 논란 일듯
불안한 시장…'9월 조정론' 리스크 더 늘었다
  • 등록 2021-09-21 오전 10:48:00

    수정 2021-09-21 오전 10:48:00



<미국 뉴욕 현지에서 월가의 핫한 시선을 전해 드립니다. 월가브리핑이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투자의 맥을 짚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역사적으로 금융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전 위기 요인을 공부하고 대비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또 구멍이 생기는 탓입니다. 지난 2008년 미국 투자은행(IB) 순위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에 이어 4위였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또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20일(현지시간) 글로벌 금융시장은 소란스러웠습니다. 전날 홍콩 항셍지수가 3.30% 빠졌는데, 이번주 첫 거래일인 이날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장 초반부터 급락했습니다. 유럽 증시, 국제유가, 비트코인 등은 모두 하락했습니다.

이는 중국 헝다(恒大·Evergrande) 파산설 공포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헝다는 중국 2위 부동산 개발업체입니다. 몸집이 상당합니다. 그런데 당장 오는 23일 도래하는 이자를 낼 돈이 없을 정도로 유동성 경색이 심각합니다. 이자를 못 내면 도리가 없습니다. 디폴트(채무불이행)인 것이지요. 헝다에 돈이 마른 건 기정사실이고요. 중국 정부가 과연 구제를 위해 나서줄지, 또 최악의 경우 금융시스템을 건드릴 지가 초미의 관심사인데요. 아직 모든 게 불확실하기만 합니다.

월가는 그동안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피크를 지난 기업 실적 △예상보다 빠른 긴축 가능성 △바이든 정부 증세 리스크 등을 조정장의 근거로 점쳤습니다. 헝다 리스크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급부상할 것이라고 본 곳은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헝다를 분석해보니, 예상보다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위기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지고요. 투자는 언제나 최악에 대비해야 합니다.

최근 5거래일간 스탠더드앤트푸어스(S&P) 500 지수 추이. (출처=구글 제공)


이자도 못 내는 부동산 2위 기업

상황이 심상치 않음이 시장에 퍼진 건 지난주부터입니다. 중국 금융당국은 헝다의 채권 은행들을 만나 대출 이자 상황이 어려울 수 있다고 통보했습니다. 헝다는 그 직후인 13일 “전대미문의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파산설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는데요. 그럼에도 투자 심리는 급격히 악화했습니다.

이후 15일 중국 신용평가사 중청신국제(CCIX)는 헝다 회사채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강등했습니다. 아울러 추가 하향을 검토하는 워치리스트에 등록했습니다. 이튿날인 16일 헝다는 자사가 발행한 역내 채권(Onshore bond)에 대한 거래 중지를 신청했고, 거래소는 이를 승인했습니다. 하루 동안 거래가 멈춘 겁니다. ‘휴지조각 채권을 누가 사겠는가’ 하는 심리가 깔렸겠지요. 로이터는 이를 두고 “헝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근본 원인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 정부가 주요 부동산 개발회사의 부채 수준을 규제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부동산 시장의 호조를 틈 탄 무리한 사업 확장을 막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헝다만 해도 식품, 레저 등에 이어 전기차 사업까지 손을 댔습니다. 특히 회사 부채가 자산 대비 70%를 넘으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데, 중국 내 건설사 증 현재 이 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10% 남짓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중국 부동산은 취약합니다.

헝다와 자회사 텐허가 달러화, 위안화, 홍콩달러화로 발행한 채권 규모는 6월말 기준 1조9700억위안(약 3038억달러)에 달합니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없지만, 헝다는 이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당면한 문제는 오는 23일까지 내야 하는 8353만달러입니다. 텐허까지 더하면 1억1900만달러입니다.

이걸 어찌어찌 낸다 해도, 29일까지 4500만달러 이자를 또 내야 합니다. 이렇게 올해만 지급해야 할 이자액이 약 7억달러입니다. 이를 넘겨도 난관은 이어집니다. 내년부터 77억달러 규모의 채권 만기가 돌아와서 갚아야 합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3년 108억달러, 2024년 34억달러, 2025년 61억달러, 2025년 13억달러 등의 만기가 줄줄이 도래합니다. 헝다가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입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이를 알아채고 헝다의 신용등급을 강등해 왔습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해 7월 헝다의 신용등급을 ‘B+’에서 ‘B-’로 하향했고, 8월과 9월 잇따라 ‘CCC’, ‘CC’로 각각 내렸습니다.

금융 시스템 리스크 옮겨 붙을까

문제는 헝다의 파산이 헝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자칫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건드릴 수 있어서입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헝다와 관련한 간접 리스크들이 계속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다행스럽게도 헝다가 중국 은행 시스템에 미칠 악영향을 제한적인 듯합니다. 현재 헝다의 대출 규모는 3890억위안(약 600억달러)으로 추정됩니다. 중국 내 은행 대출 총액에서 0.3% 비중도 안 됩니다. 디폴트가 현실화하면 은행권의 부실채권(NPL) 비율이 올라갈 건 자명하지만, 당국이 관리 가능할 것으로 기자는 판단합니다.

다만 역외 달러채권 시장의 충격은 다소 클 수 있습니다. 헝다가 발행해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달러화 표시 회사채 규모는 중국 하이일드(고수익 고위험) 달러채권의 16% 안팎으로 추정됩니다. 아시아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하이일드 회사채를 발행한 곳이 헝다입니다. 이 채권들이 휴지조각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헝다 회사채를 매수한 금융기관들이 부실을 우려해 다른 대출들을 회수할 게 뻔하고요. 이는 시장 전반의 자금 경색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다른 기업들마저 디폴트 위기에 직면해 금융기관들의 부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면, 말 그대로 금융위기의 도래입니다. 니혼게이자이가 “헝다 달러채가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고 한 게 이런 의미입니다. 헝다 파산이 중국판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근거입니다.

세 번째 충격은 중국 내 부동산 시장입니다. 헝다는 유동성 압박에 처하자 분양권을 선지급한 후 이들로부터 계약금을 받는 식으로 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그 규모가 일단 수십만건으로 추산되는데요. 상황에 따라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헝다가 무너지면, 부채에 의존해 사업을 진행한 다른 부동산 개발회사들이 그 후폭풍을 피해 가지 못할 겁니다. 이들도 헝다처럼 사실상 돈줄이 막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이 국내총생산(GDP)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넘습니다. ‘세계의 공장’ 중국 경제가 가라앉으면, 세계 경제의 타격은 불보듯 뻔합니다.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 (사진=AFP 제공)


제2의 LTCM 사태 vs 제2의 리먼 사태

금융시장이 주시하는 건 중국 정부가 헝다 사태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입니다. 시장이 대략 상정하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시나리오는 중국 정부가 적극 개입하는 겁니다. 헝다의 천문학적인 부채 규모를 감안해 일단 자본을 직접 쏟아부어 급한 불을 끈다는 겁니다. 이날 뉴욕 증시 폭락을 지켜본 월가는 이 시나리오에 기울어 있는 듯합니다. 강세론자인 에드 야데니 야데니리서치 대표는 CNBC와 만나 “헝다는 무너지기에는 너무 크다”며 “정부가 개입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금융시장에 큰 악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야데니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아니라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태와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LTCM은 당시 자본금의 50배에 이르는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했는데, 아시아 외환위기 탓에 신흥국 채권가치가 폭락하면서 파산 위기에 몰렸습니다. 이때 미국 정책당국이 골드만삭스 등 채권 은행들을 동원해 긴급 자금을 지원했고, 다행히 충격파는 미미했습니다.

마르코 콜라노비치 JP모건체이스 수석시장전략가는 이날 메모를 통해 “하룻밤 사이에 확대한 시장 매도세는 이미 인지하고 있는 리스크에 대한 투자자들의 과잉 반응 탓”이라며 저가 매수를 추천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사태를 잘 수습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실제 이날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장 막판 매수세가 대거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일견 간단해 보이는 이런 구제책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LTCM 사태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논란을 불렀습니다. 중국 정부도 이를 알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미 천명한 디레버리지(deleverage), 즉 부채 축소를 통한 부실기업 정리 의지가 시작하자마자 좌초할 수 있습니다. 헝다가 다시 살아난다면, 중국 경제의 도덕적 해이는 활개를 칠 게 분명합니다.

릭 라이더 블랙록 최고채권투자책임자는 “중국 은행 시스템은 정부에 의해 통제 받는 경향이 있다”며 “정부는 (이번 사태에)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만 “이번 사태를 마무리 지어도 곧 다른 부동산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직접 돈을 대지는 않은 상황에서 ‘질서 있는 디폴트’를 유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습니다. 디폴트가 불가피한 현실은 인정하되, 정부가 움직여 헝다가 자산을 매각할 시간을 벌어주고 시공사와 협상을 통해 공사는 지속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지요. 다만 이런 이상적인 구조조정이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역시 정부가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겠지요. 헝다가 청산 절차를 밟으면, 당장 금융시장이 아니라 중국 내 사회 분란을 걱정해야 합니다. 계약금을 내놓고 주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속출할 테니까요. 월가는 이런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습니다. 월가 금융사 한 인사는 “중국 정부가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마르코 콜라노비치 JP모건체이스 수석시장전략가. (출처=JP모건)


‘9월 조정론’ 위험 하나 더 늘었다

‘9월 조정론’의 여파는 작지 않은 듯합니다. 헝다 사태가 잘 마무리될 것이라는 월가 내 컨센서스와는 무관하게 시장 전망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저가 매수의 기회”라는 콜라노비치의 조언과는 달리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수석시장전략가는 “S&P 지수는 20% 이상 조정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일단 뉴욕 증시 3대 지수 선물은 이날 폭락 후 반등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제 실시간으로 챙겨 봐야 할 이슈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중국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이목이 집중될 겁니다. 투자하기 참 어려운 시기입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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