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시무식사를 통해 전국의 법관들에게 전한 메시지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국회에선 헌정 사상 초유의 판사 탄핵 소추안 통과가 목전이다. 삼권분립의 헌법적 가치를 무시한 ‘입법부의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정작 외부의 공격에 의연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던 김 대법원장의 대처법은 ‘침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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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범여권 의원 161명은 지난 1일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탄핵소추안은 오는 4일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이탄희 의원 등은 임 판사를 향해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재판을 바꾸기 위해 재판 절차에 개입하고 판결 내용을 수정하는 등 ‘사법 농단 브로커’ 역할을 했다”고 소추 사유를 밝혔다. 임 판사는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앞서 가토는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한 칼럼을 써 명예 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 발의에 대해 국민의힘은 ‘거대 여당의 사법부 길들이기’라고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지만 정작 사법부를 대표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은 침묵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대법원장 탄핵’이라는 맞불까지 꺼내든 상황이다.
김 대법원장의 침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대검찰청의 이른바 ‘판사 사찰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김 대법원장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하거나 유감을 표하지 않았다. 당시에도 김 대법원장은 전국법원장회의에서 판사 사찰 의혹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은 채 “법원과 재판의 독립을 지키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만 말했다.
이보다 앞서 ‘광복절 보수 단체 광화문 집회 허용’, ‘정경심 동양대 교수 1심 징역 4년 선고’ 등 각종 판결에 대해 정치권의 비난이 쏟아질 때에도 김 대법원장은 법관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으로 재판에 집중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미 여당에선 감염병 우려 지역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법안에, 광화문 집회를 허용한 박형순 판사의 이름을 따 ‘박형순 금지법’이라는 이름을 붙여 발의하면서 판사 겁주기에 나선 뒤였다.
지난 2017년 김 대법원장은 취임식에서도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떤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사법부 독립에 대한 김 대법원장의 말은 일관됐으나 정작 독립이 위협 받을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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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서도 김 대법원장의 침묵을 두고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2일 성명서를 통해 “국회의 탄핵 소추 그 자체로서 사법부에 던지는 함의는 막대하고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은 그 회복이 어려울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고 본다”며 “이런 지경에서 김 대법원장은 사태를 막기 위한 노력은 고사하고 말 한마디 없다. 이러고도 사법부의 수장 자리에 계속 머물고자 하나”라며 김 대법원장을 규탄했다.
한 지원장 출신 변호사는 국회의 탄핵 소추 시도에 대해 “사실 관계에 대한 논의 없이 탄핵이 진행되는 것 자체가 순수한 의미보단 다른 목적이 내포돼 있지 않냐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김 대법원장의 침묵에 대해선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독립이라든지 전체 구성원에 관계된 문제는 의견을 내야 한다”며 “사법부 법관의 탄핵이라는 것은 판사 개개인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법부의 생명과 같은 부분에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소극적인 것이라고 본다”고 평했다.
이 밖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공화국의 기초인 삼권 분립이 무너지고 있는데 사법부의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가”라며 “이런 상황에서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말 한마디 못하는 대법원장이 너무나 한심하고 부끄럽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