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법관 독립’ 강조 김명수...與 법관 탄핵 시도엔 또다시 침묵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안, 4일 국회 본회의 표결 예정
김명수, 신년사서 "외부 공격에 단호하게 대처" 강조
'판사 사찰', '박형순 금지법' 발의 때도 침묵 이어가
한변 "사태 막기 위한 노력 고사하고 말 한마디 없어" 비판
  • 등록 2021-02-03 오전 5:00:00

    수정 2021-02-03 오전 5:00:00

[이데일리 이성웅 기자] “때로는 판결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넘어 법관 개개인에 대해 공격이 가해지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저는 대법원장으로서 헌법적 책무를 항시 잊지 않고,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부당한 외부의 공격에 대해서는 의연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입니다”

지난달 4일 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시무식사를 통해 전국의 법관들에게 전한 메시지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국회에선 헌정 사상 초유의 판사 탄핵 소추안 통과가 목전이다. 삼권분립의 헌법적 가치를 무시한 ‘입법부의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정작 외부의 공격에 의연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던 김 대법원장의 대처법은 ‘침묵’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행정자문회의 1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관 독립” 줄곧 강조…정작 독립 침해 땐 ‘침묵의 역사’ 써 온 김명수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범여권 의원 161명은 지난 1일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탄핵소추안은 오는 4일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이탄희 의원 등은 임 판사를 향해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재판을 바꾸기 위해 재판 절차에 개입하고 판결 내용을 수정하는 등 ‘사법 농단 브로커’ 역할을 했다”고 소추 사유를 밝혔다. 임 판사는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앞서 가토는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한 칼럼을 써 명예 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번 발의에 대해 국민의힘은 ‘거대 여당의 사법부 길들이기’라고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지만 정작 사법부를 대표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은 침묵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대법원장 탄핵’이라는 맞불까지 꺼내든 상황이다.

대법원이 이번 사태에 대해 내놓은 공식적인 입장은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한다”면서도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정도 뿐이다. 대법원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입장문을 김도읍·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실에 전달했다.

김 대법원장의 침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대검찰청의 이른바 ‘판사 사찰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김 대법원장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하거나 유감을 표하지 않았다. 당시에도 김 대법원장은 전국법원장회의에서 판사 사찰 의혹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은 채 “법원과 재판의 독립을 지키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만 말했다.

이보다 앞서 ‘광복절 보수 단체 광화문 집회 허용’, ‘정경심 동양대 교수 1심 징역 4년 선고’ 등 각종 판결에 대해 정치권의 비난이 쏟아질 때에도 김 대법원장은 법관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으로 재판에 집중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미 여당에선 감염병 우려 지역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법안에, 광화문 집회를 허용한 박형순 판사의 이름을 따 ‘박형순 금지법’이라는 이름을 붙여 발의하면서 판사 겁주기에 나선 뒤였다.

지난 2017년 김 대법원장은 취임식에서도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떤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사법부 독립에 대한 김 대법원장의 말은 일관됐으나 정작 독립이 위협 받을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한 셈이다.

열린민주당 강민정(왼쪽부터), 정의당 류호정,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1일 국회 의안과에 임성근 법관 탄핵소추안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법부에 회복 어려운 중상”…김명수 향하는 비난의 화살

대법원의 침묵에 당사자인 임성근 판사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임 판사는 지난 1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입장문을 내고 “법관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당사자이긴 하지만, 탄핵 소추가 국회의 권능인 이상 국회법에 따른 사실 조사가 선행되기를 희망하며, 그러한 절차가 진행된다면 저로서는 당연히 그 조사에 응하겠다”며 “사실 관계의 확인도 없이 1심 판결의 일부 문구만을 근거로 탄핵 소추의 굴레를 씌우려 하는 것은 특정 개인을 넘어 전체 법관을 위축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도 김 대법원장의 침묵을 두고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2일 성명서를 통해 “국회의 탄핵 소추 그 자체로서 사법부에 던지는 함의는 막대하고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은 그 회복이 어려울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고 본다”며 “이런 지경에서 김 대법원장은 사태를 막기 위한 노력은 고사하고 말 한마디 없다. 이러고도 사법부의 수장 자리에 계속 머물고자 하나”라며 김 대법원장을 규탄했다.

한 지원장 출신 변호사는 국회의 탄핵 소추 시도에 대해 “사실 관계에 대한 논의 없이 탄핵이 진행되는 것 자체가 순수한 의미보단 다른 목적이 내포돼 있지 않냐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김 대법원장의 침묵에 대해선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독립이라든지 전체 구성원에 관계된 문제는 의견을 내야 한다”며 “사법부 법관의 탄핵이라는 것은 판사 개개인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법부의 생명과 같은 부분에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소극적인 것이라고 본다”고 평했다.

이 밖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공화국의 기초인 삼권 분립이 무너지고 있는데 사법부의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가”라며 “이런 상황에서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말 한마디 못하는 대법원장이 너무나 한심하고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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