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기로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마찬가지다. 전세 살던 집은 비워줘야 하는데 새로 구하자니 근처 다른 아파트 전셋값이 다락같이 올랐고, 팔려고 내놓은 자신의 집은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해 매각이 무산될 처지에 몰렸던 사연이 알려지자 그는 바뀐 임대차법에 부메랑을 맞은 고위 경제관료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상당수 국민의 시선에는 “잘 걸렸다”는 화풀이 감정과 “공직자가 딱하게 됐다”는 이해의 심정이 교차했을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은 광란의 부동산 시장과 맞서 싸운 글래디에이터(검투사)다.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보이고 주거 안정을 해치는 집단과 세력이 나타나면 이 칼, 저 칼 다 뽑아 혈투를 벌였다. 이들의 사명감과 용기는 칭찬해 줄만 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관객(국민)이 보낸 건 격려와 응원 함성이 아니다. 야유와 원성 뿐이다. 왜 그랬을까? 답은 간단하다. 자신들의 헛발질 정책에 대한 과신과 집착 탓도 있지만 말(言)때문에 벌은 ‘매’도 만만치 않다. 고의적이건 아니건 잘못 끄집어낸 단어와 표현,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이 부아가 치밀게 한 경우가 허다해서다.
경청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고, 일부러 딴청을 피운 것도 아닐 터다. 하지만 시장의 소리, 국민의 호소를 귀담아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려고 조금 더 노력했다면 말로 번 매의 횟수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경영학의 그루 피터 드러커는 “먼저 생각하고 마지막에 말하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경청에서 정답이 나오고 딴청을 피울수록 궤변의 위험은 더 커진다. 변창흠 국토부장관 내정자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시장에서는 그가 과거에 주장했던 ‘개발이익 환수’ 등 반(反)시장정책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변 내정자가 부동산 때문에 생긴 국민 홧병을 단번에 날려 버릴 순 없더라도 안 맞아도 될 매를 말로 맞는 일은 더 없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