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조철현 건설부동산부장] 1344조원.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부채 규모다. 1년 새 141조원 늘었다. 부채 크기도 위협적이지만,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한국 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뇌관이다. 급기야 금융당국은 최근 사실상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 나섰다. 가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시중은행에 이어 저축은행·상호금융회사·보험사 등 제2금융권 돈줄까지 틀어 막아버린 것이다. 주요 타깃은 아파트 중도금 대출이다. 가계부채 증가의 주범으로 중도금 집단대출을 지목한 것이다.
창구 지도 공문으로는 만족 못한 금융당국은 하루가 멀다하고 금융회사 책임자들을 불러 중도금 대출 점검에 나선다고 한다. 곧 출범할 새 정부가 내놓을 가계부채 대책을 염두에 두고 ‘우리도 할 일은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심산도 엿보인다. 관치 금융이 따로 없다. 이러다 보니 시중은행은 물론 제2금융권에서도 아파트 중도금 대출 신규 취급을 잠정 중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정부의 우려와 달리 중도금 대출이 가계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빚 1344조원 중 중도금 집단대출은 108조원으로 전체의 8.1%에 불과하다.
연체율도 낮은 편이다. 중도금 집단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현재 0.29%로 가계신용대출(0.51%)이나 기업대출(0.79%)에 비해 상당히 낮다. 그만큼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얘기다. 더욱이 중도금 대출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을 받는 데다 시공사(시행사)도 연대보증을 하고 토지도 담보로 잡는 등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금융기관으로서도 크게 손해 볼 일이 없는 대출인 셈이다.
이런데도 금융당국이 집단대출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것은 그 위험성보다는 통제가 쉽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총량 규제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가장 접근하기 쉬운 게 집단대출이라는 것이다.
대출 규제로 분양시장은 그야말로 ‘돈맥경화’에 걸렸다. 높은 청약률과 함께 완판(100% 계약)된 아파트 단지도 중도금 대출 은행을 찾지 못해 1차 중도금 납부일을 늦추기 일쑤다.
피해는 고스란히 실수요자와 건설사 몫이다. 여차하면 아파트 분양 계약자가 각자 알아서 중도금을 마련해야 할 판이다. 금융권이 돈줄을 죄면서 대출 금리마저 뛰고 있다. 시중은행만해도 중도금 대출 금리가 4%대 중반까지 올랐다. 반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여전히 사상 최저인 1.25%에 머물러 있다. 건설업계도 죽을 맛이다. 중도금이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건설사는 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해 자금난에 처하게 되고 결국엔 부도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하지만 잘못 짚은 대책은 효과를 낼 수 없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헛발질을 계속 하고 있으나 답답한 뿐이다. 적어도 분양 계약률이 높거나 공공택지 등 입지 좋은 단지에 대해서는 중도금 대출을 허용해 실수요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