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입’이라 불렸던 지냈던 요제프 괴벨스의 말이다. 그는 언론을 장악해 대중을 선동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의 선동은 세뇌에 가까웠다.
히틀러를 신격화하기 위한 거짓말은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 끊임없이 되풀이됐다. 거짓말은 교묘했고, 집요했다. 600만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려는 거짓말도 그러했다.
물론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인간이다. 학살은 말 그대로 학살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학살이란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그러나 독일 국민들은 세뇌된 ‘좀비’였다. 우두머리를 따라 무작정 앞으로 달리다가 절벽에서 함께 떨어져 죽는 나그네 쥐들처럼 뻔한 거짓말을 믿었다. 그들은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리플리 증후군’ 환자들이었다.
거짓말과 그 거짓말을 향한 믿음의 댓가가 어떠했는지는 역사가 말해 준다. 인간이 인간을 강제하고, 구속하고, 고문하고, 빼앗고, 죽이는 치욕의 역사가 그 시대에 쓰여졌다.
그런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괴벨스의 망령이 여전히 우리 곁을 떠돌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얼마 전 국내 한 신문 보도는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했다.
인터넷에서 논쟁을 벌이던 젊은이들이 속칭 ‘현피’(온라인 상에서 다투다 현실에서 만나 주먹다짐을 벌이는 일)를 하게 됐는데, 그 발단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폭동’이냐 아니냐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있을까. 광주민주화운동이 폭동이라니. 어쩌다가 이런 거짓말을 믿게 됐는가.
실제로 지금도 각종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인터넷 상에는 일부 극우 세력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왜곡·날조하고 있고, 이를 일부 1020세대들이 믿고 있다. 거짓말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같은 나라 국민을 향해 무장한 군대가 대검과 곤봉을 휘두르고, 총을 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폭동이라니, 광주 시민들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란 말인가. 광주민주화운동은 1990년 법률로써 피해자의 보상과 명예회복이 이뤄졌다. 그것도 전 전 대통령의 친구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때 말이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사회적 합의와 평가가 이미 끝난 사안이다.
아무리 최근 학교에서 근현대사 교육이 대폭 축소됐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이게 바로 무지와 증오를 이용한 거짓말의 힘인 것일까.
우리는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이 독도나 위안부와 관련해 망언을 할 때마다 공분한다. 그것이 거짓말이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 거짓말이 언젠가 단죄될 것이라고 믿는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일컬어 폭동 운운하는 거짓말도 그렇다. 백번 반복해도 진실이 될 수 없다. 거짓말은 결코 역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