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부펀드들이 전 세계에서 왕성한 기업 사냥을 벌이자 각국에서는 국부펀드에 대한 견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국부펀드에 대한 규제는 세계 경제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국제 금융가에서는 국부펀드를 둘러싼 ‘금융 보호주의(financial protectionism)’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몸집 키우는 국부펀드들
미국계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현재 전 세계 국부펀드의 운용자산이 약 2조5000억달러에 이르고, 2015년에는 12조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중동 국가들의 경우 고유가(高油價) 덕에 막대한 오일달러가 쌓이면서 국부펀드 운용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현재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인 ADIA의 운용자산은 8750억달러에 이른다.
최근 중국도 막대한 무역흑자를 통해 쌓은 1조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 중 2000억달러를 떼내 국부펀드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국부 펀드, 왕성한 기업 사냥
문제는 국부펀드들이 세계 각국에서 ‘국민 대표 브랜드 기업’을 사들이면서, 투자 대상국의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지난 7월엔 싱가포르 국영투자기관인 테마섹과 중국개발은행(CDB)이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 지분을 인수한 데 이어 카타르 국영투자펀드가 영국 슈퍼마켓 체인인 세인즈베리 인수를 추진한다고 발표, 영국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국부펀드 경계론 확산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의 정부와 의회에선 국부펀드 규제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메르켈(Merkel) 총리가 최근 “사적인 투자 이익보다 정치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국부펀드는 긴급히 다뤄야 할 새로운 현상”이라고 경고했고, 기민당 카우더(Kauder) 원내 의장은 “연내에 국부펀드의 독일 기업 인수를 막는 법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매크리비(McCreevy) EU 역내시장 집행위원은 지난달 “국부펀드 활동에 대한 (유럽연합 차원의) 규제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러시아·인도·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천연자원, 통신, 국가안보 관련 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 지분을 법률로 직접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 국영 투자기관인 테마섹은 지난 2일 연차 보고서를 통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의 보호주의 확산으로 국제 투자 환경이 점차 열악해 지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지난 3일 호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에 참석한 21개국 재무장관들은 “금융보호주의의 확산은 글로벌 경제 성장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이제 시작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한 지 2년이 채 안돼 국부펀드로서는 걸음마 단계이다. 해외 기업 인수·합병(M&A) 시도는커녕, 주식 투자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다.
하지만 국부펀드에 대한 새로운 규제는 향후 움직임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홍석주 한국투자공사 사장은 “금융 보호주의의 확산은 국부펀드 활동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면서 “향후 해외 자원 등에 투자할 때, 해당국 민족주의를 자극할 정도의 공격적 투자는 자제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부펀드 (soverign wealth funds)
세계 각국의 국영투자기관이 운용하는 외화자산(펀드)을 말한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투자청, 싱가포르의 테마섹이 대표적인 국부펀드이며, 한국에선 2005년 7월 한국투자공사(KIC)가 설립돼 200억달러의 외화자산을 운용하고 있다.